나의 불편한 첫사랑
페이지 정보
작성자 현시은 작성일2024-03-28 조회110회 댓글0건첨부파일
-
나의 불편한 첫사랑 시놉.pdf (125.5K) 0회 다운로드 DATE : 2024-03-28 12:28:41
-
나의 불편한 첫사랑 5.pages (225.5K) 1회 다운로드 DATE : 2024-03-28 12:28:41
본문
연락처 | 01041044063 | 이메일 | huns2in@naver.com |
---|---|---|---|
제목 | 나의 불편한 첫사랑 |
파일 첨부가 두개의 파일밖에 첨부 되지 않아 간략한 시놉시스와 5화 원고 첨부하고 본문에 1회 2회 3회 4회 원고 첨부해서 투고합니다 혹 투고 방식이 잘못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검토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1)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2014년 3월 14일]
“이거 다 같이 실으면 될까요?”
“네! 같이 넣어주세요! 유진이는 어디갔어, 여보..! 야 구운몽 너는 또 어디있어!”
“나 여기있잖아!”
“그럼 유진이는? 야 구유진!”
물건들이 다 빠져나가 텅 비어버린 방 한 가운데 우뚝 서있는 유진으로 추정되는 남학생
집 안팎으로는 시끌시끌한 소리가 한창인데 가만히..한 곳만을 응시하고 서있다
“어디있겠어요 제가 집에 있겠지..”
엄마의 목소리가 우리 아파트.. 아니 우리 동네를 울릴만큼 크게 울려퍼진다 내 이름 구유진인거 우리 아빠 이름이
구운몽인거 세상 사람 다 알게 생겼다 아 이미 알겠구나?
어렸을 적부터 살았던 집을 떠나보내는 시간이라 감성을 좀 잡아보려고 해도 엄마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니까
감성이고 뭐고 동네 사람들이 소음공해로 신고 할까 겁이난다
“이거는 사다리 차로 내리겠습니다”
대답없는 유진이를 찾아다니는 것도 제쳐두고 다시 이삿짐 옮기는 거에 집중하는 지은
그 옆에 딱 붙어있는 운몽은 지은이 한 마디 하면 쪼르르 달려간다
“네네 그래주세요, 어이 구운몽씨 너는 저거 드는 것 좀 도와드려”
과연 인부들에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운몽을 보낸건지 붙어 있는 운몽이 귀찮아서 보내는 건지 모르겠지만
인부들 따라서 움직이는 운몽을 바라보는 지은의 표정을 보면 후자가 더 타당한 듯 하다
“그거는 따로 실을게요! 운몽! 그거 챙겨놔요”
“알겠어~ 어이구 저 주세요 이거는 제가 챙길게요”
인부 아저씨들이 분주히 집안을 왔다갔다 움직이고 사다리 차가 몇 번을 올렸다 내렸다 반복하니 어느새
집이 꽉 찰 만큼 많았던 가구가 싹 빠져나간다 새삼 텅 빈 방을 보니 기분이 이상한 유진
“…미안하다 네가 토 할 만큼 짐을 쳐 넣었구나..”
집과 함께한 19년이란 세월이 짐과 장롱 밑에 숨어져있던 수북한 먼지만큼 두터웠던 시간임을 느끼게 된다
“하..”
“어우 감사합니다~ 야 다실었다 여보!”
“저렇게 좋으실까”
텅 빈 방과 비교되는 한껏 상기된 표정에 부모님을 교차로 바라보니.. 저절로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온다
“잘있어 그리울거야”
평소 감성적인 성격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유진인데 오늘은 이상하게 방이 유진을 계속해서 붙잡는지
한번에 나갈 수가 없다 문 앞 까지 걸어갔던 유진은 괜히 또 뒤를 돌아 바로 앞에 보이는
책상이 있었던 자리에 벽면을 손가락으로 쓱 만져본다
이 행위는 유진과 집이 나누는 마지막 인사라고 생각하면서 분위기를 잡아보는데
“아 먼지”
손가락에 검정 먼지가 묻어져 나오니 재빠르게 손을 털어낸다
역시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은 하는게 아닌데…
“아 진짜 가기싫어 진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 유진 다 큰 열아홉살 남자애가 뭐 하는 짓거리인지 모르겠지만 유진은
지금 밖에서 들리는 이삿짐 나르는 소리도 부모님의 하하호호 웃는 소리도 모두 다 너무 싫다
[이사 일주일 전]
“그래서 저희가.. 왜 부산으로 가요? 아들이 지금 고삼인데?”
유진은 순간 멀쩡한 귀를 의심했다 할 말이 있다며 거실로 불러내서 하는 말이 ‘이사간다’ 딱 한 마디만 내뱉는
운몽과 지은
화창한 봄날에 걸맞는 3월 모의고사를 앞 둔 예민한 정시러 유진은 부모님 한데 이런 얘기를 듣게 될 줄 누군들 알았을까
“어! 좋지 아들?! 어때? 좋지않니?”
어떻냐니 ..?
‘좋기는 개뿔이요..’
부모님에게 이런 말을 해도 될 지 모르겠지만 .. 뭐 이런 대책없는 사람들이 있는지 유진 속마음을 차마 숨기지 못하고 눈으로 말을한다
‘네 좋지 않아요 싫어요’
유진 눈빛에 의미를 아는 운몽 옆에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앉아있던 지은이 입을 떼며 유진에게 해명을 한다
“나는 말렸어 하지만 늘 그렇듯이 구운몽이가 말을 안듣는거 알잖아”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서울 외에는 아무 연고도 없는 주제에 갑자기 부산으로 가자고 하면 어느 청소년이 좋다고
거기다가 지금 3월 모의고사가 얼마 안남았다니까요?
어이없는 유진가 어이가 없었던 지은 모두 한 곳만을 바라보고 그곳에는 생글생글 웃고만 있는 운몽이 입을 연다
“살다보면 굳~이 왜 그런일을 할까 싶은 일을 해봐야 진정한 인생이고 청춘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가족도 그럴 때가 되었다”
운몽 말이 끝나자마자 머리에 손을 짚는 두 사람 지은과 유진
“미친, 지금 네 아들이 고삼이라고”
“하..아빠는 진짜”
그런데 어째..지은도 반대를 하는 상황임이 분명한데 이상하게 유진의 촉은 이 모든 일이 결국에는 운몽의 바램대로 흘러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집에서 19년을 산 유진의 촉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것도 이겨내면서 크는거지”
“이겨내는거는 나인데 왜 아빠가 이겨내라고 하세요,그리고 엄마도 동의하는거죠?”
지은의 눈을 피하지 않고 쳐다보는 유진 왠걸 유진의 눈을 피해 아래로 시선을 돌려버리는 지은
‘하? 이럴 줄 알았어’
유진은 이로써 지금 이 협상 테이블은 지은,운몽 대 유진으로 이루어진 테이블임을 알아챈다
“글쎄다... 원망할거면 구운몽을 원망해라 유진아 네 아빠가 최백호 아저씨보다 더 낭만을 찾을 줄 어떻게 알았겠어 알았으면 나도 결혼 생각 다시 했지”
“여보! 거짓말이지!”
유진에게 변명하듯 머리카락을 빙빙 돌려꼬면서 말하는 지은 그럼에도 시선을 여전히 유진을 보지 못 한다
“말 돌리지 말고요 내 편이에요 아빠 편이에요”
“야! 가족 사이에 편이 어딨어 나는..”
잠시 고민하는 지은에게 운몽은 다 알고있다는 듯 여유롭게 지은에게 회심의 일격을 날린다
“솔직히 당신도 싫지 않잖아? 맨날 아스팔트만 봐서 바다 보고 싶다고 했잖아~내가 자기 때문에 가는거지 뭐 달리 가겠어?”
“..그거는 그랬지.. 그러면 바다 보러가자고 드라이브로 꼬시지 누가 이사를 가냐?”
“맨날 맨날 자기 보고싶을 때 내가 짠 하고 보여주고 싶으니까 그렇지 가서 우리 맨날 바닷가 산책하자 어?”
“그런거에 내가 좋다고 따라갈 것 같은가봐”
끝났다 이미 엄마는 아빠의 꼬임에 홀라당 넘어갔고 이로써 유진 혼자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
지은을 자기 편으로 만들기에 성공한 운몽은 타깃을 바꿔 살인미소를 머금고 유진을 바라본다
절대로 살인미소 따위에 넘어가지 않으리라 다짐을 굳게 하는 유진 시선을 맞춘다
“부산.. 너무 기대 되지 않니 유진아?”
“네 기대 되지 않아요 저는”
낭만가이 우리 아빠는 실속파 우리 엄마를 변화시켰고 그 변화에 유진만 19년째 죽어나고 있다
어릴적에도 남들 다하는 태권도는 흔하다고 남들과 다르게 축지법을 해야한다며 어린 유진을 데리고 책방에 들럴
낡은 중고책을 사서는 하루만에 완독하고
그 날 아빠랑 운동한다고 들떠서 어린 마음에 아껴뒀던 새 신발을 꺼내신었던 어린 구유진은
발 뒤꿈치와 엄지 발가락에 물집을 얻어서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던 축구도 벤치에 앉아 바라만 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도 엄마는 초반 몇 분만 아빠를 말리시더니 곧 아빠 말에 설득되어서 유진과 밖에 나가 걸을 때면 축지법 보여달라고
유진 손을 잡고 방방 뛰셨다 축지법은 개뿔이.. 엉터리 책에 엉터리 방법으로 가르치니 될 리가 있나
그냥 좀 우스꽝스럽게 걷는 초등학생만 되었지
유진은 그때 느꼈던 치욕과 뒤꿈치가 까졌던 상처의 고통을 상기시키며 이번에는 어떻게 말릴 수 있을까 생각하는데
맞은편에 앉은 커플은 깨가 쏟아지는 중이다
“가서 바쁘다고 산책도 안할거면서”
“왜 안해줘 내가! 당신이 말하면 칼퇴하고 바로 와서 해야지”
‘얼씨구..라고 하면 너무 버릇이 없나’
“거짓말치네~”
더이상 알콩달콩한 모습 따위 보고싶지 않은 유진은 박수 두번으로 찬물을 끼얹는다
[짝짝-]
“아니 저기요 두분? 두분 바닷가 산책 하시는 동안 학교도 가고 공부도 해야하는 저는 뭐 없어요?”
“유진아! 너는 걱정 할 필요가 없어 아빠가 전학도 다 신청했고 교복도 다 알아봤어”
“아니 벌써 다 해놓고 나한데 말하는 거에요? 뭐가 그래!”
“엄마는 바닷가 산책이라도 좋아하시죠 그럼 저는요? 저한데도 좋은 거래 조건이 있다면 들어나 보겠습니다”
“뭐라고?”
“푸하하하하하, 유진아?”
“..왜요?”
순간적으로 정색하는 지은과 웃음을 터뜨리며 실컷 비웃더니 유진을 부르는 운몽
두 사람 표정을 보니 유진이 원하는 방향으로 돌아가기는 글렀다 싶다
“네?”
“미안하지만 너는 선택권이 없어 그냥 가자고 하면 가는 거야… 엄마 좀 웃겼다 ”
“그러게.. 유진이가 엄마랑 아빠랑 좀 더 오래오래 살아야겠다”
때론.. 직설적으로 말을 뱉는 엄마보다 웃으면서 돌려말하는 아빠가 더 아니 훨씬 얄미운 유진은
애초에 본인 동의도 필요없는 건을 토론이랍시고 머리를 굴렸던 것이 자신이 참으로 한심스럽다
그런 유진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드라마 할 시간이 됐다고 협상 테이블에서 슬슬 벗어나려는 두사람
“아 나 정도전 봐야 되는데 시간 너무 뺏겼다, 이제 엄마 찾지마”
“나도 나도 같이 봐”
“잠깐만, 저기요! 두 분 잠시 멈추세요”
이번에도 축지법 사건처럼 가만히 앉아서 물집을 얻고 어기적 걸어 다닐 수는 없는 유진은
자리를 뜨려는 행동을 취하는 지은과 운몽을 급하게 붙잡아 본다 조금 아니 사실 많이 구차하고 찌질하게 보이지만
그래도 어떠한가 중요한 정보라도 알고 넘어가야 하는게 유진의 처지인데..
“또, 왜”
“저기 아니 언제가는지는 말해주셔야죠!”
유진의 간절한 외침에 지은과 운몽도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교환을 하다 운몽이 유진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아 .. 그렇지 그거는 말해줘야지 언제냐면..”
-
[2014년 3월17일]
“하아- 피곤해.. 유진이도 그렇지?”
신발장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부모님을 보고도 유진은 말없이 가방만 챙겨든다
“..아직도 화났나봐 유진이“
운몽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하는 지은 손으로 입을 가리기만 하면 안들릴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손으로 가리기만 했을 뿐 목소리 자체가 커 다 들릴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걸까?
“화 안났는데요”
물론 화가 다 풀렸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사실 유진의 기분이 저기압인 이유는 새로운 방에 아직까지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
잠에 깊게 들지 못해 피곤함이 배가 된 상태라 그런거지만 그렇다고 해명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마저도 귀찮다는게 유진의 정확한 기분이다
“오..화 났네 났어”
“..여보… 유진이 건들지마..”
면전에서 놀리는 지은과 점점 굳어가는 아들을 보는 운몽은 좌불안석이라 말려본다
“웃긴다 누구때문인데.. 나는 남편 편들어준 죄 밖에 없어 미움은 내가 받고 있구만”
“듣고 보니까..엄마 말씀이 맞네요, 아빠?”
“ 하하하 뭘 따지고 그래!”
“웃지마 짜증나, 너도 입술 집어넣어라 확 썰어버린다”
지은의 무서운 으름장에 슬그머니 입술은 집어 넣지만 그래도 자존심은 살아있어 창가로 고개를 훽 돌려버리는 유진
이상하게 첫 등교라는 압박감 때문인지 멀미가 밀려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니 진짜 토사물이 올라오는 착각까지 한다
“..아 토 할 것 같아..”
“자 얼른 나가자 유진이 데려다주고 여보도 내려다주고 나도 가야되니까 얼른!”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이 이제 막 시작되는 유진은 설레임보다는 걱정이 가득하게 쌓여간다
“자 출발합니다!”
운전석에는 운몽 조수석에는 지은 그리고 뒷좌석에 기대 앉아있는 유진
쉬지않고 수다를 떨며 깨가 쏟아지는 앞좌석 커플과 비교되게 말없이 창문만 바라볼 뿐이다
‘시끄럽다..노래나 듣자’
이어폰을 찾기 위해 가방 속을 뒤적거리지만 유진 손에 잡히는 것 중 이어폰으로 추정되는 물체는 없다
“아씨…저 내려주세요”
“뭐야 왜!”
“무슨일이야 아들!”
“뭐 좀두고왔어요..먼저가세요”
“아이 뭐라고..언제 돌아가니 그냥 가”
“아니에요 필요해서 그래요 그냥 내려주세요 두 분 먼저 가시고요”
어쩔 수 없이 갓길에 차를 세우자 뒷좌석 문이 열리고 유진이 내린다 내심 전학 오고 첫 등교날이라 학교 앞까지 데려다 주고 싶었던
운몽은 아쉬움 가득하게 유진을 바라보지만 냉정하게 차문을 닫고 달려가는 유진만 애처롭게 본다
“아들 그만 보고 출발, 부인 데려다주면 되지! 자 출발 구기사!”
-
“늦을 것 같은데..뛰자”
다행스럽게도 차를 타고 얼마 가지 않고 내려서 집까지 거리가 멀지는 않지만
여유롭게 걸어가기에는 시간이 조금 촉박할 것 같아 유진은 가볍게 뛰기 시작한다 지나치는 모든 사람들이
큰 길 방향으로 향하는데 혼자만 반대방향을 향하는게 아직은 이곳에 적응하지 못 하고 있는 본인 처지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에 잠겨 골목길 코너를 돌아가다 마주오던 사람을 피하지 못 하고 그대로 충돌해버린다
“아!!”
“아…죄송합니다”
“아이씨..따가..”
크게 부딪힌 바람에 넘어져있는 유진 또래로 보이는 여학생과 앞에서 어쩌지 못하고 엉거주춤 서있는 유진
같이 부딪히고 왜 유진 자신만 멀쩡하게 서있는건지 조금 억울하다
“괜찮으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다른 생각을 하는 바람에 일어나세요”
사과와 함께 손을 내미는 유진 잡고 일어나라는 뜻으로 내민건데 보니 여학생 손에 핏방울 맺혀있다
인상을 쓰던 여학생은 유진의 손은 신경도 쓰지않고 급하게 핸드폰 시간을 확인하고는 벌떡 일어난다
“어..우 다리는 괜찮으신가보네..”
머쓱하게 내민 손을 슬며시 접어 뒤로 숨겨버리는 유진 호의를 거절 당한 것 같은 느낌에 살짝 머쓱한 유진인데
“..헐 늦었어!”
머쓱한 유진 따위는 개의치 않다는 듯이 유진을 어깨로 살짝 밀치고 가던 길로 바로 달려가는 여학생은 뒤를 돌아
멍하니 여학생만 바라보고 있는 유진에게 한마디 말만 남기고 갈뿐이다
“괜찮아요! 가던 길 가세요 아저씨!”
..아저씨..? 누가봐도 교복을 입고있는 자신에게 아저씨라고 부른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이름 모를 여학생
“찰과상 입혔다고 엿먹이나..참나”
황당한 유진은 무심코 고개를 숙이다 여학생이 두고 떠난 명찰을 주워든다
“임채이…”
세로보다 가로가 더 길쭉한 작은 명찰에 박혀있는 이름 ‘임채이’
“..자기 이름도 두고갔네”
유진은 명찰을 주머니에 챙겨들고 집이 아닌 학교로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2)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않아 2
[2014년]
“아오..다리 아파 버스로 몇정거장이야 이게”
유진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고 떠난 여학생 아니 채이는 본인 가슴에 명찰이 없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지각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학교 정문을 통과하지만 양쪽에 나열된 선도부와 가운데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학생 주임 선생님에게 뒤꽁무니를 잡히고 만다
“어이어이 니 이리온나 몇학년 몇반~?”
“네? 저요 왜요? 저 오늘 아무것도 안했는데”
“그렇겠지 아무것도 안했겠지 그래서?! 명찰도 없겠지 학생이라는 자식이 니 삼학년이지? 그냥 쓰고 가라 가서 한 글자라도 외워라”
“명찰이요?”
주임 선생님 말에 다급하게 본인 가슴팍을 내려보는데 명찰이 있어야 할 곳에는 당연히 명찰이 없다
명찰은 지금 유진 교복 자켓 안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헐…미친..저요..3학년 2반 임채이..”
“헐…어디서 욕이야 씨 내일 명찰 챙겨서 나한데 오면 조용히 넘어간다 알겠지, 자 이제 출발 오라이 빨리 가라 임마”
도대체 명찰은 어디서 떨군거지 오늘 아침 집에서부터 일진이 사납더니 넘어지고 학주한데 걸리기까지 운수가 좋지 않은 채이는
오늘 하루 몸을 사리며 행동하리라 다짐한다
[지잉-]
그때 핸드폰을 쥐고있던 오른쪽 손에 진동이 느껴지고 털을 잔뜩 세운 상태에 채이는 발신인 확인 후 인상을 잔뜩 쓰며 전화를 받는다
[가업을 이을 남자 임성민]
“응? 갑자기?, 뭐요”
[야 ! 어디야 너]
“이새끼가.. 너 왜 다짜고짜 소리질러 맞을래?”
다짜고짜 소리지르는 상대방에 분노 게이지가 가득 차있는 채이도 지지않고 상대방에게 소리지르며 말한다
[아니? 안맞을건데? 아 어디냐고 지금 배수정이랑 버스,이제 내려 기다려]
“기다리기는 개뿔..나는 말이지 정문이기는 하지만 3초뒤 떠날 예정, 뛰던지 아니면 그냥 교실에서 봐 끊는다”
[야..야 임채이!]
[뚝-]
전화 예절이 살짝 모자라 보이는 채이인데도 수화기 너머 발신인은 기분 나쁜 내색은 없고 기다려달라고 애처롭게 부르기만한다
“아침부터 전화를 하고있어 얘는 맨날 천날 보는 사이에”
통화를 끊고 운동장을 계속해서 가로질러가는 채이는 마주치는 학생들과 인사를 하고 오른손에 또 진동이 느껴진다
확인하지 않아도 누군지 알 것 같은 기분에 채이는 가던 길 또 한번 멈춘다
[지이잉-]
[가업을 이을 남자 임성민]
“아 얘는 왜 자꾸 전화질이야”
전화를 받지 않고 화면만 바라보던 채이는 한숨 한번 크게 내쉬고는 왔던 길을 되돌아 걸어간다
성가셔 죽겠다는 표정으로 성민 전화를 끊어버리고서는 마중은 나가주는 이들의 우정이 참으로 희한하다
“야!!”
큰 마음 먹고 데리고 가려고 했건만 먹은 마음이 무색하게 이미 정문에서 뛰어오고있는 성민과 뒤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수정
“..뭐야 축지법은 언제 연마한거야?”
3초 뒤 떠날 예정이라고 하니 잘 타고 있던 버스 창문에서 뛰어내리기라도 한건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투블럭머리를 휘날리며 채이 앞에 짠하고 나타난다
“야! 임채이 좀 기다리라고!”
급하게 뛰어온 티를 내는지 숨을 헉헉 거리며 뛰어오는 성민 뒤에 빼꼼 보이는 수정은 늘 그렇듯 핸드폰 게임만 열중하며 자신만의 페이스로 천천히 걸어온다
“뛰어오니까 더 못생겼네”
발에서 불이라도 나오는 것처럼 달려 채이 앞에 도달한 성민은 그제서야 멈춰서 숨을 실컷 고른다
“땀 흘리는 남자가 멋있다던데.. 아 진짜 개힘들어”
“남자 나름이지 투블럭이나 어떻게 하고서 달리던가 뭐야 날개야 거기서 부스터가 나오나”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성민의 양쪽 머리를 날개처럼 쥐어잡는 채이에 성민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피해본다
“아 머리 만지지마! 이씨..”
“야 날아봐! 날아봐!”
“아이 미친 진짜”
“거 되게 까탈스럽네 수정 하이”
“어 하이, 나 지금 이거 깨야되거든? 안부는 교실에서 나누자고 친구”
“멋져 야 이제 걸어”
“좀 같이가면 어디가 덧나냐?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가는게 얼마나 큰 이벤트인지 니가 아나!”
쑥스러움을 모르는 건지 정신이 나간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후자에 가까운 것 같아 보이는 성민은 운동장 한 가운데에서
큰 엉터리 사투리로 사랑을 외친다 지나가는 사람 모두 큰소리에 쳐다보다가 목소리의 주인공이 성민임을 알고는
금방 고개를 돌려 가던 길 간다
“야야. 너 사투리 못 하는거 여기 사람 다 알아 다 , 쳐다보잖아 조용히해”
“뭐래 완전 네거티브구만 나 부산에서 8년째야”
“사투리 개 못해 너 서면에서 그래봐봐 너 돌팔매질이 뭔지는 알아?”
수정 성민 채이는 초등학교 고학년 비슷한 시기에 서울에서 전학을 온 아이들이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었고
그 결과 사투리는 늘지 않아 무척 어설프다 그렇지만 성민은 꿋꿋하게 부산 말씨를 쓴다
혹여나 사투리 어설프게 따라한다고 돌팔매질 당할까 늘 채이와 수정이 주의를 주지만 그 말을 들어먹을 성민이 아니다
가만히 성민 말을 듣고있던 채이는 답답한 마음 가득 담아 한숨 쉬며 말을 빠르게 쏟아놓는다
“좋아하기는 개뿔, 야 내가 지금 한 8년째 말하는데 너는 나를 좋아하는게 아니라 그시절 나를 잠깐 좋아했던 너에게 취한거라니까?”
“니가 뭘 알아! 내 마음을”
그 말을 듣고 성민도 지지않고 말한다 이런 다툼이라고 말하기도 유치한 대화를 두 사람은 8년째 이어나가고
옆에서 듣는 수정은 이제는 더이상 이 일에 끼어들지 않는다
더 이상 운동장에서 싸움하며 아침을 보낼 수 없던 채이와 수정은 성민을 옆으로 툭 밀어 넣고는 걷기 시작하고
덩치 값 못하듯이 툭 밀려나는 성민은 두 사람을 졸졸 쫓아간다
“야! 내도 데리고 가라고! 좀 ”
“어머 미친놈! 야 뒤돌아보지말고 걸어 수정아”
고개를 앞으로 고정하고 경주마 마냥 앞으로만 걸어가는 채이와 옆에 수정 그러다 수정은 뒤를 돌아 성민을 바라본다
“야 너 나한데 하트 좀 보내”
“이씨, 현질을 하던지 왜 자꾸 나한데 보내래”
“헤헤, 좀 보내라 임마 아 지금 엄마 아들이 또 나를 제꼈잖아!”
“야! 엄마아들이 제낄 수도 있지 너를 제끼고 먼저 태어나셨는데 그정도야 뭐”
“그러니까 내가 지금 열받는 거야 감히 나를 제끼고 태어난 주제에 나보다 높은 등수에 위치한다고? 말이돼?”
“그래 그래라 꼭 갈 때는 니가 먼저 가라?”
“어 그러려고 일단 그 전에 너를 내 손으로 직접 보내고 가려고 가자”
풀이 한참 죽어있더니 하트가 필요한 수정과 몇마디 만담을 이어가더니 금세 살아나서는 수정고 어깨동무를 하고 신이나서 달려간다
“참..단순하다 우리 좋아 아주”
-
“안녕하세요..”
이상하게 주눅들게 되는 교무실 안에는 반 열쇠를 챙기러 들어오는 주번들과 이미 출근해 업무를 보는 선생님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그 사이로 쭈뼛거리면서 들어온 유진은 아무도 말을 붙여주지 않아 머쓱해서는 문 쪽에 붙어서 서있는다
그런 유진을 말없이 주시하고 있던 중년의 남자 선생님은 드럼스틱을 한 채만 들고 유진에게 슬그머니 일어서 다가와 말을 건낸다
“니는 누구..?”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선생님에 놀람도 잠시 누군가 말을 걸어줬다는 사실에 조금 감격스러워 숨이 트이는 유진 자신을 소개한다
“아 저는 이번에 전학온 구유진이라고 합니다,교무실로 오라고 하셔서”
“아아, 서울에서 온다는.. 흐음..”
유진의 소개에 단박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가자미 눈을 뜨고는 유진을 머리부터 발 끝까지 스캔하기 시작한다 잘못 한 거 없는 유진이지만 이상하게 긴장이 되서 슬그머니 발을 얌전히 붙이며 똑바로 선다
“근데..니는 고삼이나 되서 와 서울에서 여까지 전학을 왔지? 니 뭐 혹시 아들 괴롭히고 그랬나”
유진이 전학 온 이유를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선생님이 황당한 유진은 생각을 한다
내가 전학을 오게 된 이유…
‘부모님이 해안가 산책하러 부산을 가신대요’
“아니요? 그냥 이사를 가게되서 온건데..요?”
“그래? 뭐..다 컸으니까 괜히 학교 분위기 흐린다거나 하지마라 알겠지?”
남은 기간 동안 조용히 내신 성적 잘 지키다가 다시금 서울로 떠나고 싶은 유진도 선생님 못지 않게 정말 바라는 일이다
“저도 조용히 잘 있다 가고 싶습니다”
“그래? 뭐 니가 그렇다면 됐고.. 보자.. 니가 민석쌤… 어 오셨네 민석쌤! 여기 전학생 받아요”
가자미 눈 선생님이 이제 막 교무실에 들어오 남자선생님을 손을 흔들며 부른다 그러니 웃으며 빠른걸음 으로 유진과 가자미 눈 선생님에게 다가온다 유진보다 10살 정도 많을까 싶은 젊은 남자 선생님이
새로운 유진의 담임선생님인 모양이다 가까이서 보니 꽤 훈훈하게 생긴게 여학생들 한데 인기가 있을 것 같다
“안녕하세요 수학선생님, 전학생은 이제 제가 맡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수학.. 별론데?’
하필이면 가자미 선생님이 본인이 취약한 과목 담당이라니 비호감의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된다
“네 그러세요, 마 니는 수학시간에 보자이?”
“네! 들어가세요! 선생님”
싹싹하게 인사를 하는 민석 옆 유진은 조용히 고개만 살짝 까딱해서 인사를 건낸다 그런 유진의 머리를 푹 눌러 90도 인사를 만드는 선생님
“인사는 90도, 아 나는 담임이야 좀 소개가 늦었다”
“안녕하세요”
“그래그래 너는 구유진..오늘부터 3반이고 나는 믿기지 않겠지만 한국사 담당이고 이름은 이민석”
“믿어지는데 왜요?”
“어라? 딱 봐도 몸이 좋으니까 체육선생님 같지 않니?”
“아…”
본인 입으로 저런 말을 내뱉다니… 뭐라고 반응을 해줘야 할 지 모르겠는 유진은 눈에 빛을 거둔채 입꼬리만 스윽 올리고 민석을 바라본다
“야, 농담이야 임마”
이상한 표정을 짓고있는 유진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 치면서 자리에 앉은 민석, 유진은 옆에 의자가 놓여있지만
그냥 가만히 서있는다
“아..농담 하하..웃겨요”
민석은 농담을 하고는 씩 웃으며 3-3반이 쓰여있는 출석부를 펼친다 펼쳐진 출석부를 번호 순으로 쭉 1번 부터 증명사진과 아이들 이름이 하나씩 나열되어 있다
“증명사진은 모레까지 가지고 오면 되고 우리반 반장은 여기 8번 ... 그리고 얘,임성민 얘가 좀 나내는데 애는 착해”
민석이 가리키는 손가락 끝에 걸쳐있는 증명사진에는 성민이 머리에 뭔가를 잔뜩 바르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환하게 웃고있다
얼굴만 보아도 그가 짓고있는 미소만 봐도 요주의 인물임이 확 느껴지는 유진 이 아이와는 가까이 하지 않는게 좋을 것 같다
‘와 얘는… 멀리하자’
사진인데도 부담스러워 눈 마주치기 겁나는 유진은 성민을 피해 재빨리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려는데
“어..?”
성민 밑에 억지미소를 짓고는 머리를 하나로 묶어 올린 여학생의 사진을 보고 왜인지 반가운 기분이 드는 유진은
자연스럽게 여학생에게 모든 감각이 집중이 되어 민석의 말이 한 귀로 들어와서 나머지 한 귀로 곧바로 빠져나간다
“와..”
‘반갑네’
사진 밑에 적혀있는 이름 세글자 [임채이]
그리고 지금 유진 자켓 주머니 안에 있는 채이의 명찰, 오늘 아침에 의도치 않게 찰과상을 입혔던 그 학생이 오늘부터
유진과 한 반에서 생활을 하게 되다니 이정도면 재밌는 우연이라고 말 해도 될 것 같다
“우리는 보통 아침에 자습을 하고 큰 이슈들은 게시판이나 반장이 고지를 할거야…야 너 내 말 듣니?”
“..네?! 아 죄송합니다 ”
“됐다 지금 뭐 새로운 학교에서의 삶이 기대되서 심장이 막 쿵쾅쿵쾅 거릴텐데 내 말이 들어오겠냐..가자”
“가요? 어디를요?”
“가긴 어딜가 교실 가야지”
타이밍 좋게 예비종이 울리고 복도에 남아있던 학생들은 요란스럽게 각 교실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쌤 안녕하세요 ”
“어 빨리들 들어가라”
[3-3]
“다 왔다 우리반”
3학년 3반 앞에 나란히 선 유진과 민석
앞 문을 뚫고 나오는 요란한 소리.. 3학년 3반은 고삼 아이들이 모여있는게 맞나 싶을 정도로 시끄럽다
“..우리반 애들은 고등학교 삼학년이 아닌 것 같애, 초등학교 삼학년 수준이야”
시끌시끌한 소리를 듣는 민석은 많은 의미가 담긴 듯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하하..”
“들어가자 우리 망아지들 만나러”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9년 인생 중 가장 임팩트 있는 등장인물을 유진은 이제 만나게 된다
(3)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3
아이들이 하나 둘 등교한 교실 가운데 분단 제일 마지막 자리에 앉아있는
채이는 책상에 푹 엎드린채 종아리를 터뜨리나 싶을 정도로 세게 주무르기 시작한다
“너 뭐하냐? 종아리 터뜨릴라고 그러냐?”
채이 책상 옆에 쭈그리고 앉은 성민은 가만히 눈이 땡그랗게 이쁜 고양이 마냥 올려다보면서 정작 입에서 나오는 말은
듣는 채이 성질을 살살 긁기 딱 좋은 말을 내뱉는다
“시비걸지마라 쥐나서 푸는거니까..”
“참 쟤 시비를 거는건지 걱정을 하는건지 아직도 모르겠어”
“시비라니 걱정이지 애정을 듬뿍 담은 걱정”
“아 내일 알 제대로 박힐 것 같은데 ”
[쾅!]
“야야 부시겠다 진정해”
생각해보니까 분이 차오르는 듯 책상을 박차고 일어서는 채이 여전히 다리는 아프지만 마음에 차오르는 짜증을
걷잡을 수가 없는 채이
“..그걸 왜 가지고 가셨다니”
“아니.. 딸내미가 모아둔 현금을 들고 튀는 사람이 어디있냐고 아침에 개놀랐다니까 진짜? 내가 봤을 때는 돈만 가직 바로 나갔어 아 짜증나 이렇게 부모가 내 발목을 잡는다”
“그러니까 내일은 내가 내줄게 우리랑 너네 집으로 갈게”
“야 됐어 내가 또 어렸을 때 보고 자란게 있어서 절대 빚은 안지잖아 괜찮아 내일 알바비 나와..그냥 분해서 그렇지 엄마때문에”
“야 우리 사이에 그게 빚까지 가냐 ”
“내 소신이다 존중해줘라”
사실 수정 말대로 하루만 신세를 지는 게 좋지 않은 거는 아니지만 한번 빚지기가 어렵지 두번 세번은 아주 쉬워지는걸
부모님 덕분에 뼛 속 깊이 알고 있기에 수정에 고마운 선의를 한사코 밀어낸다 그런 채이가 수정은 조금 서운하기는 하지만
속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기에 오늘도 수정이 채이를 이해하고 넘어간다
그때 무언가 생각에 잠겨있는 성민이 조심스럽게 입을 떼며 두사람 대화에 끼어든다
“..근데 말이야.. 너 어제 나한데 매점에서 빵 빌려가지 않았냐?”
“어…머나”
“뭔 놈의 소신이 이렇게 줏대가 없이 바뀌냐?”
“그거는 그냥 적선..? 정도로 생각 할 수 없을까?”
“적선은 씨.. 됐어”
“그런데 진짜 너네 어머니 너무하셨다 채이야..”
“그러게 말이다 야 태어난 순간부터 인생이 장르물이야 아오 짜증나..나는 청춘물 밖에 안보는데”
“야야 채이야 그래도 혹시 모르지”
“모르기는 뭘 몰라 내 앞으로의 인생?”
“아니.. 말고 좀 지금부터 너의 인생이 상속자들, 응칠 같아질 수도 있지 여주 임채이 남주는..”
“나!!”
“남자주인공이 임성민이라면 계속 장르물로 갈 것 같은데 피해자로.. 음..”
“거 진짜 말을..”
채이 말대로 부모님 덕분에 인상적인 장르물 드라마는 열심히 찍어왔으니 지금부터라도 하이틴 청춘물이 펼쳐지기를 간절히 바래보지만 지금 채이에게 더 크게 신경쓰이는 것은
아까부터 자기 자리에 앉아있는 성민 때문에 자리에 앉지도 못 하고 있는 원래 자리 주인 지완이 신경이 쓰일 뿐이다
“야 임성민 됐고 너는 니자리로 좀 꺼져”
[드르륵]
“다들 자리에 앉아라”
“쌤 안녕하세요~”
3반의 담임선생님 민석이 교실 앞 문을 열고 들어오니 서둘러 자신 자리로 찾아가는 학생들 수정도 본인 자리로 돌아가는데
성민만 그 자리 그대로 동작이 멈춰있다
그때 민석의 눈에 유난히 크게 들어오는 성민의 화려한 짱구 뒷통수
“어이 임성민이 내가 니 자리는 내 바로 앞으로 일년 내내 지정해뒀는데 왜 또 거기 가있지?”
“아 쌤~ 이제 천천히 자리로 가려고 하잖아요 참 성질만 급하셔서 쩝”
“하나…둘…”
민석의 채근에도 느릿느릿 행동하는 성민이 아주 익숙한 듯 민석이 조용히 카운트를 세기 시작하니 그제서야
몸을 빠르게 일으켜서 멋없게 달려간다
“아 가요!!”
“셋…!”
“짜잔 다 왔잖아요 어우 성질도 급하셔”
애꿎은 성민이 차지하고 있던 채이 앞자리 원래 주인 지완이 이제야 본인 자리를 찾아 앉는다
지완에 등을 톡톡 치는 채이 지완도 고개를 돌려 채이를 바라보는데
“미안 다음부터는 절대 못 앉게 할게 쟤가 생각이 짧아서 그렇지 나쁜애는 아닌데..아니다 나쁘다 미안”
“..나도 알아 괜찮아”
대답을 하고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리는 지완, 성민이 나쁜 사람이 아닌 거는 알지만 가끔 생각이 너무 짧게 행동 하니까
오해 받을까 대신 사과를 하지만 지완도 다 알고있나보다 하여간 성민은 하는 짓에 비해 미움을 덜 받는 아주 운 좋은 놈이라고 채이는 늘 생각한다
“자 이제부터 나만 말할거야 조용 오늘 조회는 뭐 별거는 없고 여기..뭐야 어디있어 얘”
성민 때문에 한차례 늦어진 전학생 유진의 소개를 이제야 시작하려는데 옆에 있어야할 유진이 보이지 않는다
옆을 보고 사람을 찾는 시늉을 하는 민석에게 앞자리에 앉아있는 여학생이 묻는다
“누구요?”
“어 전학생 그런데 내 옆에 와 없지?”
민석이 애타게 찾고있는 유진은 닫혀있는 앞문에 가로막힌 것 처럼 복도에 덩그러니 남겨져있다
“누군지는 몰라도 얼빠진 놈이네..그죠 쌤”
“어 성민이 니같네 기다리봐”
얼빠진 놈 유진이 이 자리 이 곳에 서있는 이유는 민석이 습관처럼 문을 닫고 홀로 들어가서는 안에서 성민과 만담을
펼치느라 들어갈 타이밍을 놓쳐버렸기 때문인데 그로 인해 성민에게 얼빠진 놈이라는 말을 듣게 되다니
[드르륵-]
“너는 왜 여기있냐 내 옆에 딱 붙어있어야지..주인공 병이야? 빨리 들어와”
“아니 저는..혼자 들어가시길래..네..”
억울한 마음 꾹 눌러담지만 그럼에도 계속 비집고 나오는 억울한 마음에 해명을 하려다가 그냥 들어가기나 하자 라는 마음으로
드디어 교실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드르륵-]
“뭐야 누군데 쟤는”
“전학생이가 지금?”
유진의 예상했듯이 전학생의 등장에 반 아이들은 놀라며 한마디씩 툭툭 던지고 성민과 수정 채이도 유진에게 시선이 쏠린다
“잘생겼는데?”
큰 키에 하얗고 누가봐도 훈남 아니 그냥 잘생긴 인간 그 자체에 유진을 보고는 몇몇 학생들은 잘생겼다고 수근거린다
‘다 들린다..’
“헐 야 임채 임채!?”
퍽퍽한 반 분위기에 싱그러운 유진이 등장하니 수정도 신이나서 쿵짝을 맞춰줄 채이를 부르기 시작하지만
이미 채이는 수정이 부르는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유진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모든 감각은 유진만을 향하고 있다
“찾았다 남주”
“아 따가워..씨..”
본인도 모르게 박수를 치려다 상처가 따가워 잠시 멈칫하는 채이는
지금 손에 남은 찰과상이 남게 된 이유가 유진인 줄은 꿈에도 모르는 채이와 그런 채이가 수정은 이상하기만 하다
“뭐라는거야 쟤는..”
혼이 나간 채이를 제외하고 다시 소란스러워진 교실 분위기에 민석이 가지고 있던 출석부로 교탁을 살짝 내려친다
힘을 크게 쓴 것 같지도 않지만 꽤 큰 소리에 아이들 목소리가 점차 줄어든다
“야야 다들 조용, 나만 말할거야! .. 어 여기는 다들 알겠지만 우리반에 새로운 얼굴이다 ..뭐하노 소개 안하고”
“이번에 서울에서 전학 오게 된 구유진이야 1년 잘 지냈으면 좋겠다”
[짝짝-]
유진의 자기소개가 아주 간략하게 끝나고 몇몇 학생은 박수로 유진을 환영해주고 유진도 반을 한번 훑어보는데
교실 맨 뒷자리에 시선이 멈춘다 생판 모르는 사람 천지인 3반에서 유일한 아는 얼굴
‘임채이다’
높게 묶은 머리와 아침과는 다르게 조금 순해보이는 얼굴 표정까지 이상하게 채이가 반가운 유진은 또 한번 주머니 속 명찰을 만지작 거린다
“아 서울 사람 잘생깄네 진짜!”
“그러게 영호야 너는 머리 안자르면 내가 어떻게 한다고 했지? 조회 끝나고 내려온나”
“아 쌤! 저만 그런거 아니에요 저어기 쌤 앞에 아이 좀 보세요 왁스도 발랐어요 점마는”
“뭐라는데! 갑자기 왜 나를..! 쌤 저 아니에요 저 안발랐어요 진짜에요”
“..성민아 나는 이제 더이상 너한데 말할 힘도 없다..자 반장이 게시판에 붙여놓은 수시 전형 각자들 확인하고 임성민 김영호 니네는 조회 끝나고 내려온나”
오늘만은 민석에 눈에 들지 않게 조용히 입닫고 있던 성민인데 혼자는 못 죽는다는 식으로 본인을 끌어들인 영호가
무척 원망스럽고 또 억울하기만 하다 성민이 보기에는 전학생 교복과 머리도 그닥 단정하지 않은 점 투성이인데
앞머리도 긴 것 같고 바지 통도 줄인 것 같고 무엇보다 채이가 원하는 외적 이상형에 너무 부합 아니 그자체에
유진이기 때문에에 한동안 아이돌 때문에 눌러져있던 성민의 라이벌 의식을 다시금 일깨운다
“그리고 유진이 너는 저기 채이 옆자리 앉아라 임채이야 손 좀 들어봐라!”
민석과 유진 성민과 다른 아이들까지 채이를 일제히 바라보지만 이상하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냥 멍하니 뭐에 홀린 것 마냥 앞만 뚫어져라 쳐다본다
“아..쟤는 또 왜저러니 그냥 저기 채이 옆자리 가서 앉아라 , 이상 끝 둘 따라서 내려오고”
오늘따라 반 아이들이 유독 말을 듣지 않는지 민석은 한숨만 푹 쉬고는 조회 시간을 급하게 마무리한다
“차렷 경례 선생님께 인사”
“감사합니다”
“오야”
민석이 손짓으로 영호와 성민을 콕 집자 영호와 성민이 투덜거리며 민석을 따라 교실을 나가고
고삐 풀린 망아지들은 순식간에 교실을 시끄시끌하게 만든다
전학생이라고 궁금해서 다들 몰려들지 않을까 했지만 그들은 조회시간에만 반짝 유진에게 관심이 있었을 뿐인듯
다들 각자 할 일을 찾아서 한다
학생들에 무관심이 서운하기는 커녕 오히려 너무 고마운 유진은 조용히 본인 자리로 걸어간다
“헐..온다”
유진이 자리로 걸어오는 한걸음 한걸음 , 박자에 맞춰서 요동치는 심장에 채이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을 시켜보려하지만 유진 얼굴이 가까워지자 크게 도움이 되지를 않는다
‘미쳤다 심장 왜 이렇게 뛰어 이대로면 나 할머니 옆으로 가겠는데..’
“안녕?”
어느새 자리에 앉아서 가방을 내려놓으며 채이에게 무심하게 인사를 건내는 유진
순간 채이는 모든 순간이 정지되고 채이와 유진만 남은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인사를 건내다 무심코 본 채이의 손에 있는 상처를 보고 살짝 인상을 쓴다 혹시 채이가 본인을 알아보지는 않았을까
내심 긴장을 했는데 손까지 흔들며 인사하는 걸 보니 전혀 모르는 눈치다 아니면.. 그냥 속이 좋은 단순한 사람이거나
“어..안녕!”
상처가 그대로 남아있는 손을 유진에게 살랑 살랑 흔들며 떨리지만 다정한 말투로 인사를 건내는 채이
앞으로 채이가 평생 잊지 못 할 사람을 채이에 퍽퍽한 열아홉에 만나게 된다
-
[2024년]
캄캄한 방 한켠에서 유진이 악몽을 꾸는 것 처럼 뒤척거린다 식은땀이 온 몸을 적시고 신음 소리만 내뱉다 눈을
번쩍 뜬다 몸을 일으켜 주위를 살피다 꿈에서 벗어난 것을 알게되자 다시 몸에 힘을 빼며 늘어지듯 몸을 눕힌다
눈을 뜨고 있기도 버거운듯 다시 눈을 감고는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한다
“..또..또 개같네 진짜”
(4) 말이 안되잖아(1)
[2024]
“하..”
커튼을 두껍게 친건지 햇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방 한 구석에 위치한 침대에서
유진이 쉽게 잠에 들지 못하는지 계속해서 몸은 뒤척거리고 한숨만 푹푹 내뱉는다
[부스럭-]
자세를 이리저리 바꾸느라 몸과 맞닿는 이불 소리와 유진이 내뱉는 한숨 소리만 제외하면 방 안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방
계속해서 뒤척거리기를 반복하던 유진이 결국 잠에 들기를 포기한건지 이불을 제끼며 일어나다
힘이 빠진듯 다시 몸을 축 늘어뜨리며 몸을 눕힌다
“또… 또 개같은 꿈”
마른세수를 하고 팔을 얼굴에 얹은채 잠시 생각에 잠기는 유진 눈을 감는다
꽤 오랜 시간동안 불면증을 앓고 있는 유진의 불면의 원인은 항상 반복해서 꾸는 어떤 시점의 꿈
머리맡을 더듬으며 핸드폰을 찾는다 전원이 들어오자 화면에 강한 빛에 눈을 찡그리면서 현재 시간을 확인한다
“4시..”
시간은 유진의 예상대로 세시가 좀 넘어 네시에 가까워지는 시간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시간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당직을 했지”
한번 잠에서 깨어나면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음을 아는 유진은 침대 옆 테이블에 놓인 스탠드 조명을 켜 불을 밝힌다
조명이 밝아지자 어두웠던 방이 한결 시야에 확 들어온다
스탠드 조명이 놓여있는 테이블 위에는 각종 책과 노트북이 올려져있고 부모님과 함께 찍은듯한 가족사진 액자와
그 옆에 앨범에도 액자에도 끼워두지 않은 사진 몇장도 보인다 습관처럼 일어나면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유진
“뭐가 좋다고 웃냐”
항상 사진을 보고나면 기분이 한껏 우울해지지만 이상하게 이 습관을 놓을 수가 없다
또다시 우울이 유진을 감싸려고 할 때 쯤 유진은 침대에서 일어나 문 밖으로 나선다
“씻자, 배수정이 말했다 우울은 수용성이라고”
-
“안녕하십니까”
피곤함 가득한 얼굴을 하고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는 유진 그중에서도 강력2팀 사무실로 들어간다
선배형사들로 가득한 곳으로 인사를 하며 들어간다
“왔냐?, 뭐야 얼굴이 뭐 저래?”
파트너이자 선배인 기준이 다크서클로 강력 2팀이 단체 줄넘기를 해도 될 만큼 내려온 유진 얼굴을 보며 놀란다
“오늘은 진짜 얼굴이 오늘내일 하는데?”
자신의 몰골을 너무나 정확하게 알고있는 유진은 손으로 거친 얼굴을 메만지며 기준에게 맞받아친다
“..왜 얼굴로 뭐라고해요 암만봐도 선배보다 낫구만”
“하하하! ..뒤질래?”
늘 피곤함에 찌들어있는 유진을 남모르게 걱정하는 기준은 일부러 유진에게 장난 섞인 시비를 자주 걸면서 컨디션
체크를 하고는 하는데 오늘의 거친 반응을 보니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 것을 확인한다
“오늘도 피곤해보인다”
“좀..그런 것 같아요 잠을 못자서”
“어린 놈이”
“하아..”
오늘따라 더 뒤숭숭했던 꿈 때문에 힘이 아주 쫙쫙 빠지는 것 같은 유진
개꿈도 레빌이 있는데 하필이면 10년전 그 날이 꿈으로 나타나다니 찝찝해서 죽을 것 같다
“야 그래가지고 땅이 꺼질까? 더 단전에서 내뱉어봐 그래야 꺼지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뭐 그렇게 또 빠르게 사과를해 민망하게”
“뭐 어느장단에 춤을 춰드려야..”
“아니 당직은 내가 섰는데 왜 나는 멀쩡한거야”
기준 말에 유진은 기준 책상에 차곡차곡 모여있는 영양제들을 바라본다 눈빛을 느꼈는지 기준이 머쓱하게 입을 연다
“영양제빨 죽인다 진짜 추천해드릴까요 선배?”
능청스럽게 옆자리 동료 형사에게 권하는 모습까지 유진은 기준을 바라보던 눈빛을 거둔다
어쩜 저렇게 능청스러운 사람들만 유진의 곁으로 모여드는건지
“운동하면 잘자요 괜찮아요”
“야 너 좀 잘먹으라니까 운동을 하면 아드레날린 폭발해서 더 잠 안온다니까 선배 말을 들어”
옆에서 떠들어라 나는 일한다 식으로 말없이 보고서 작성을 시작하는 유진
곁눈질로 쳐다보다가 괜히 마음에 들지 않는 기준이 어깨를 한번 세게 치자 그제야 샐쭉 쳐다보더니 입을 연다
“피곤하면 알아서 잠들겠죠, 이거 올려드리면 되죠?”
“어~일해 일해야 잠도 잘 오지 화이팅”
“네 그러니까 선배님도 팀장님 오시기 전에 뭐라도 하는 척 하세요 아까 주차장에 팀장님 차 있던데”
“야 나 방금까지도 일하고 왔어 또 일하러 가야되고 내가 노는 줄 알아 이거는”
“그럼 다행인데 팀장님이 워낙 선배님만 쫓으시니까 저는 걱정이 되서”
“걱정 같은 소리하네 야 보고서 저장하고 옷 입어”
“…일하시라고요”
순간 한심한 마음을 담아 기준을 올려다보는 유진에게 울컥한 유진이 허공에 주먹질을 하더니 이를 박박 물고 말한다
“일하러 가자고 새끼야 지금 누가 너랑 놀러가쟤? 빨리 나와”
“아..현장”
휑하니 먼저 나가버리는 기준을 따라 겉옷을 챙겨입으며 따라가는데
먼저 나가던 기준이 뒷걸음질을 치며 다시 사무실 안으로 슬금슬금 들어오는 모습에 얼떨결에 유진도 그자리 그대로 멈춰선다
“어…어 오셨습니까”
깐족깐족 거리는 기준이 각잡힌 모습으로 누군가에게 인사를 건내길래 유진도 고개를 쑥 내밀어 확인을 하다
곧바로 각을 잡는다
“왜 그러세요?..아 오셨습니까”
시끄러운 기준에 입을 다물게 만들고 유진에게 90도 인사를 받는 그는
바로 강력2팀 서철호 팀장 이하 서팀장이다 좀 화도 많고 성질도 많이 부리지만 그래도 옛날 아저씨들 특징인 건지
마음씨는 착하고 정도 많은 편이다 아..! 머리숱도 아직 풍성한 편이며 참고로 미혼이다
휴무날마다 소개팅 하러 다니는 것은 2팀뿐 아니라 여기 강력계 사람들 모두 다 알지만 성공적인 소개팅을 위해 비밀로 다들 모른체를 해주는데
오늘도 어제와 다르게 반듯해보이는 옷차림을 보아하니 소개팅 약속이 잡혀있는가보다
“너네 어디가냐?, … 구유진 너는 얼굴이 왜 또 그모양이야”
“아..잠을 못 자서”
“잠을 또 왜 못자!?”
“아무래도 우리 후배 유진이가 커서 뭐가 되려는지 아주 밤마다 열심히 업무 보고서를 만드느라..”
“너네 어디가냐고”
기준의 말을 끊으며 한번 더 되묻는 서팀장 누가봐도 기준 말이 길어지는 기미가 보이니까 끊지만
그런 서팀장의 모습을 즐기는 이상한 성격의 기준은 굴하지 않고 발랄하게 묻는 말에 대답을 한다
“아! 저희가 어디를 가냐면요? 바로 현장조사하러 갑니다 뭐 어디서 뭐가 와장창 우당탕..”
서팀장은 열심히 말을 하는 기준과 옆에 가만히 서있는 유진을 지나쳐 걸어가며 또 말을 끊는다
“그래 다녀오고, 구유진 너는 또 나대지 말고 조용히 다녀와”
“제가 또 언제 나댔다고..”
“맨날, 맨날 천날 이새끼야 가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기준이 유진의 팔을 끌고는 사무실을 벗어나고
“그러니까 새끼야 네가 저번에 소매치기 잡는다고 오바쌈바한거 아직도 서팀장님이 미움 받고있는거 알지”
경찰서를 벗어나며 주차 되어있는 차로 이동하는 사이 기준이 유진에게 잔소리를 한다
저번 소매치기 일당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유진이 조금 아니 많이 과격하게 제압을 한 사실에 윗분들로 부터
서팀장이 유진 대신 이것저것 들었던 사실을 말한다
“네 압니다”
“그러니까 좀..”
서팀장이 고맙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유진은 절대 그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지 어느새 입이 또 샐쭉 삐져나오기 시작한다
“어디서 입을 삐쭉거려?”
“아니 그렇다고 제가 범죄자들 한데 예의 갖춰서 대우해야 합니까? 저 그런거 싫은데요”
“뭐래? 내 말은 팀장님 앞에서만 네네 하라고 나가서 니 마음껏 하던지 말던지”
“아…”
“아주 웃겨..지만 잘났어 아주 야 ,키 내놔”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조수석으로 가세요”
어젯 밤 당직을 선 기준을 위해 유진이 신경써서 운전석으로 움직이는데 재빠르게 다가온 기준에게 조수석으로 밀려나는 유진
왜이러냐는 표정으로 기준을 쳐다본다 호의를 베풀었는데 돌아온 것은 몸통박치기라니
“지금 네 얼굴을 보고 차 키를 주면 나는 형사 자격이 없다 좋은 말로 할 때 조수석으로 꺼져”
“잠 못 잔거는 피차일반이니까 조금이라도 젊은 제가..”
[쾅-]
더 이상 말대꾸 하지 말라는 듯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먼저 운전석에 훽 하고 타버린 기준은 여전히 운전석 앞에 멀뚱거리며 서있는 유진에게
창문 틈새로 손을 내밀며 얼른 가라는 듯 손짓을 휙-한다
“얼른 꺼져 조수석으로”
[쾅-]
“나중에 뭐라고 하지나 마세요”
“됐고 네비나 찍어라”
“걱정되면 걱정 된다고 하시지 참 말을 밉게하는 재주가 있으세요”
“어 내가 그 재주 너한데 배웠잖아”
“네네 그렇죠”
“야 그런데 너 진짜 뭐 수면 클리닉 이런 거 안가도 되냐?”
목적지 설정 후 조수석에 기대 앉는 유진에게 기준이 무심하게 말을 건낸다
“네 안가도 됩니다”
“왜? 너 맨날 이상한 꿈 꿔서 못 잔다며 가위인지 뭔지”
“가위는 아니고.. 그냥 개꿈이요”
“어? 너 그 말 취소해 나 반려인이야 개 아무데나 붙이지 말아라”
“아 예 알겠습니다 그럼.. 이상한 꿈”
“알긴 뭘 알아 수면클리닉 가라고 그냥”
“됐습니다 진짜”
완강하게 말하는 유진에게 더이상 권유하지 못하고 운전에 집중하는 기준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며 기준의 말을 다시금 생각해보지만 한번 놓쳤던 사람을 다시 놓치고 싶지 않기에
아직은 꿈 속에서라도 꼬옥 동여메고 살아가고 싶을 만큼에 간절함이 유진에게 남아있다
-
[2014]
[지이잉-]
“어이 임채 전화온다 받아라”
급식을 멋있게 해치운 후 운동장 계단에 나란히 앉아있는 채이와 성민,수정 세사람 다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있고
광합성을 받으며 잠깐의 여유를 즐기는데 채이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음? 누구지? 야 잠깐 이것 좀 먹지마라”
“아싸 공짜로 굴러들어온 캔디바다”
[010-xxxx-xxxx]
성민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낸 후 전화를 바라보는 채이, 저장되어 있지 않는 번호지만 모르는 번호는 아니다
분명 좋은 이유로 걸려오는 전화를 아니라는 걸 채이는 알아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나 2층 아줌마야”
“네 안녕하세요 무슨일이세요?”
[어..아이고 엄마가 또 입구에서 주무시네 몇번을 깨워도 몸도 못 가누고]
“아 진짜요... 죄송합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학교라.”
[어 알지 내가 모셔다 드릴까 해서 전화했어]
“감사합니다..열쇠는 아마 엄마 가방에 있을건데 없으면.. 우편함 한번 확인해보세요. 죄송합니다”
[어 알았어 정말 엄마만 모셔다 드리고 나올테니까 걱정하지말고 어 끊을게~]
“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하-아”
전화가 끊어지고 한숨을 쉬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엄마 때문에 시끄러운 채이 속마음과 다르게 하늘은 쓸데없이
맑고 구름 한 점 없는게 꼭 전화를 받기 전 채이 기분 같아서 그래서 화가 난다
벤치에 몸을 축 늘어뜨리는 채이 쨍쨍한 햇빛에 눈을 계속 뜨고있기가 힘들지만
그냥 계속 올려다 본다 생각을 하면 머릿 속 공기가 탁해져가는 걸 느끼며 계속 채이를 심연으로 끌고 간다
“?”
“뭐해 왜 이러고 있어?”
그때 눈 위로 덮어지는 손바닥 하나 덕분에 하늘은 물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손을 떼어내려는 찰나에
들려오는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에 손을 잡아 떼고 초점을 맞춰서 바라보는데
“ 구유진?”
“하늘 올려다보면 눈만 아프던데”
“헐 대박”
유진이 채이 앞에 나타나기만 했을 뿐인데 기분이 순식간에 환기가 되기 시작하니 스스로도 놀라는 채이와
덤덤한 표정으로 채이를 내려다 보는 유진
“가자 종쳤어”
심연에 끌려가는 듯 했던 채이를 끌고 나온게 유진의 말 한마디라니 스스로도 어이가 없지만 지금 이순간 채이에게
유일한 숨 쉴 구멍이 유진이 되다니 처음 유진을 봤을 때와 다른 느낌에 채이는 혼자 앞으로 걸어나가는 유진을
다급하게 쫓아간다
“유진아 너는 정말 최고야”
“갑자기?”
“방금까지 나 숨을 못 쉬고 있었는데 니가 내 숨을 트여줬어 그래서”
“말을 왜 하다가 말아 얼른 말해봐”
“너한데 반한 것 같지만 부담스러워 할 수 있으니까 말하지 않을게”
—
(1)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2014년 3월 14일]
“이거 다 같이 실으면 될까요?”
“네! 같이 넣어주세요! 유진이는 어디갔어, 여보..! 야 구운몽 너는 또 어디있어!”
“나 여기있잖아!”
“그럼 유진이는? 야 구유진!”
물건들이 다 빠져나가 텅 비어버린 방 한 가운데 우뚝 서있는 유진으로 추정되는 남학생
집 안팎으로는 시끌시끌한 소리가 한창인데 가만히..한 곳만을 응시하고 서있다
“어디있겠어요 제가 집에 있겠지..”
엄마의 목소리가 우리 아파트.. 아니 우리 동네를 울릴만큼 크게 울려퍼진다 내 이름 구유진인거 우리 아빠 이름이
구운몽인거 세상 사람 다 알게 생겼다 아 이미 알겠구나?
어렸을 적부터 살았던 집을 떠나보내는 시간이라 감성을 좀 잡아보려고 해도 엄마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니까
감성이고 뭐고 동네 사람들이 소음공해로 신고 할까 겁이난다
“이거는 사다리 차로 내리겠습니다”
대답없는 유진이를 찾아다니는 것도 제쳐두고 다시 이삿짐 옮기는 거에 집중하는 지은
그 옆에 딱 붙어있는 운몽은 지은이 한 마디 하면 쪼르르 달려간다
“네네 그래주세요, 어이 구운몽씨 너는 저거 드는 것 좀 도와드려”
과연 인부들에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운몽을 보낸건지 붙어 있는 운몽이 귀찮아서 보내는 건지 모르겠지만
인부들 따라서 움직이는 운몽을 바라보는 지은의 표정을 보면 후자가 더 타당한 듯 하다
“그거는 따로 실을게요! 운몽! 그거 챙겨놔요”
“알겠어~ 어이구 저 주세요 이거는 제가 챙길게요”
인부 아저씨들이 분주히 집안을 왔다갔다 움직이고 사다리 차가 몇 번을 올렸다 내렸다 반복하니 어느새
집이 꽉 찰 만큼 많았던 가구가 싹 빠져나간다 새삼 텅 빈 방을 보니 기분이 이상한 유진
“…미안하다 네가 토 할 만큼 짐을 쳐 넣었구나..”
집과 함께한 19년이란 세월이 짐과 장롱 밑에 숨어져있던 수북한 먼지만큼 두터웠던 시간임을 느끼게 된다
“하..”
“어우 감사합니다~ 야 다실었다 여보!”
“저렇게 좋으실까”
텅 빈 방과 비교되는 한껏 상기된 표정에 부모님을 교차로 바라보니.. 저절로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온다
“잘있어 그리울거야”
평소 감성적인 성격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유진인데 오늘은 이상하게 방이 유진을 계속해서 붙잡는지
한번에 나갈 수가 없다 문 앞 까지 걸어갔던 유진은 괜히 또 뒤를 돌아 바로 앞에 보이는
책상이 있었던 자리에 벽면을 손가락으로 쓱 만져본다
이 행위는 유진과 집이 나누는 마지막 인사라고 생각하면서 분위기를 잡아보는데
“아 먼지”
손가락에 검정 먼지가 묻어져 나오니 재빠르게 손을 털어낸다
역시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은 하는게 아닌데…
“아 진짜 가기싫어 진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 유진 다 큰 열아홉살 남자애가 뭐 하는 짓거리인지 모르겠지만 유진은
지금 밖에서 들리는 이삿짐 나르는 소리도 부모님의 하하호호 웃는 소리도 모두 다 너무 싫다
[이사 일주일 전]
“그래서 저희가.. 왜 부산으로 가요? 아들이 지금 고삼인데?”
유진은 순간 멀쩡한 귀를 의심했다 할 말이 있다며 거실로 불러내서 하는 말이 ‘이사간다’ 딱 한 마디만 내뱉는
운몽과 지은
화창한 봄날에 걸맞는 3월 모의고사를 앞 둔 예민한 정시러 유진은 부모님 한데 이런 얘기를 듣게 될 줄 누군들 알았을까
“어! 좋지 아들?! 어때? 좋지않니?”
어떻냐니 ..?
‘좋기는 개뿔이요..’
부모님에게 이런 말을 해도 될 지 모르겠지만 .. 뭐 이런 대책없는 사람들이 있는지 유진 속마음을 차마 숨기지 못하고 눈으로 말을한다
‘네 좋지 않아요 싫어요’
유진 눈빛에 의미를 아는 운몽 옆에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앉아있던 지은이 입을 떼며 유진에게 해명을 한다
“나는 말렸어 하지만 늘 그렇듯이 구운몽이가 말을 안듣는거 알잖아”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서울 외에는 아무 연고도 없는 주제에 갑자기 부산으로 가자고 하면 어느 청소년이 좋다고
거기다가 지금 3월 모의고사가 얼마 안남았다니까요?
어이없는 유진가 어이가 없었던 지은 모두 한 곳만을 바라보고 그곳에는 생글생글 웃고만 있는 운몽이 입을 연다
“살다보면 굳~이 왜 그런일을 할까 싶은 일을 해봐야 진정한 인생이고 청춘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가족도 그럴 때가 되었다”
운몽 말이 끝나자마자 머리에 손을 짚는 두 사람 지은과 유진
“미친, 지금 네 아들이 고삼이라고”
“하..아빠는 진짜”
그런데 어째..지은도 반대를 하는 상황임이 분명한데 이상하게 유진의 촉은 이 모든 일이 결국에는 운몽의 바램대로 흘러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집에서 19년을 산 유진의 촉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것도 이겨내면서 크는거지”
“이겨내는거는 나인데 왜 아빠가 이겨내라고 하세요,그리고 엄마도 동의하는거죠?”
지은의 눈을 피하지 않고 쳐다보는 유진 왠걸 유진의 눈을 피해 아래로 시선을 돌려버리는 지은
‘하? 이럴 줄 알았어’
유진은 이로써 지금 이 협상 테이블은 지은,운몽 대 유진으로 이루어진 테이블임을 알아챈다
“글쎄다... 원망할거면 구운몽을 원망해라 유진아 네 아빠가 최백호 아저씨보다 더 낭만을 찾을 줄 어떻게 알았겠어 알았으면 나도 결혼 생각 다시 했지”
“여보! 거짓말이지!”
유진에게 변명하듯 머리카락을 빙빙 돌려꼬면서 말하는 지은 그럼에도 시선을 여전히 유진을 보지 못 한다
“말 돌리지 말고요 내 편이에요 아빠 편이에요”
“야! 가족 사이에 편이 어딨어 나는..”
잠시 고민하는 지은에게 운몽은 다 알고있다는 듯 여유롭게 지은에게 회심의 일격을 날린다
“솔직히 당신도 싫지 않잖아? 맨날 아스팔트만 봐서 바다 보고 싶다고 했잖아~내가 자기 때문에 가는거지 뭐 달리 가겠어?”
“..그거는 그랬지.. 그러면 바다 보러가자고 드라이브로 꼬시지 누가 이사를 가냐?”
“맨날 맨날 자기 보고싶을 때 내가 짠 하고 보여주고 싶으니까 그렇지 가서 우리 맨날 바닷가 산책하자 어?”
“그런거에 내가 좋다고 따라갈 것 같은가봐”
끝났다 이미 엄마는 아빠의 꼬임에 홀라당 넘어갔고 이로써 유진 혼자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
지은을 자기 편으로 만들기에 성공한 운몽은 타깃을 바꿔 살인미소를 머금고 유진을 바라본다
절대로 살인미소 따위에 넘어가지 않으리라 다짐을 굳게 하는 유진 시선을 맞춘다
“부산.. 너무 기대 되지 않니 유진아?”
“네 기대 되지 않아요 저는”
낭만가이 우리 아빠는 실속파 우리 엄마를 변화시켰고 그 변화에 유진만 19년째 죽어나고 있다
어릴적에도 남들 다하는 태권도는 흔하다고 남들과 다르게 축지법을 해야한다며 어린 유진을 데리고 책방에 들럴
낡은 중고책을 사서는 하루만에 완독하고
그 날 아빠랑 운동한다고 들떠서 어린 마음에 아껴뒀던 새 신발을 꺼내신었던 어린 구유진은
발 뒤꿈치와 엄지 발가락에 물집을 얻어서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던 축구도 벤치에 앉아 바라만 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도 엄마는 초반 몇 분만 아빠를 말리시더니 곧 아빠 말에 설득되어서 유진과 밖에 나가 걸을 때면 축지법 보여달라고
유진 손을 잡고 방방 뛰셨다 축지법은 개뿔이.. 엉터리 책에 엉터리 방법으로 가르치니 될 리가 있나
그냥 좀 우스꽝스럽게 걷는 초등학생만 되었지
유진은 그때 느꼈던 치욕과 뒤꿈치가 까졌던 상처의 고통을 상기시키며 이번에는 어떻게 말릴 수 있을까 생각하는데
맞은편에 앉은 커플은 깨가 쏟아지는 중이다
“가서 바쁘다고 산책도 안할거면서”
“왜 안해줘 내가! 당신이 말하면 칼퇴하고 바로 와서 해야지”
‘얼씨구..라고 하면 너무 버릇이 없나’
“거짓말치네~”
더이상 알콩달콩한 모습 따위 보고싶지 않은 유진은 박수 두번으로 찬물을 끼얹는다
[짝짝-]
“아니 저기요 두분? 두분 바닷가 산책 하시는 동안 학교도 가고 공부도 해야하는 저는 뭐 없어요?”
“유진아! 너는 걱정 할 필요가 없어 아빠가 전학도 다 신청했고 교복도 다 알아봤어”
“아니 벌써 다 해놓고 나한데 말하는 거에요? 뭐가 그래!”
“엄마는 바닷가 산책이라도 좋아하시죠 그럼 저는요? 저한데도 좋은 거래 조건이 있다면 들어나 보겠습니다”
“뭐라고?”
“푸하하하하하, 유진아?”
“..왜요?”
순간적으로 정색하는 지은과 웃음을 터뜨리며 실컷 비웃더니 유진을 부르는 운몽
두 사람 표정을 보니 유진이 원하는 방향으로 돌아가기는 글렀다 싶다
“네?”
“미안하지만 너는 선택권이 없어 그냥 가자고 하면 가는 거야… 엄마 좀 웃겼다 ”
“그러게.. 유진이가 엄마랑 아빠랑 좀 더 오래오래 살아야겠다”
때론.. 직설적으로 말을 뱉는 엄마보다 웃으면서 돌려말하는 아빠가 더 아니 훨씬 얄미운 유진은
애초에 본인 동의도 필요없는 건을 토론이랍시고 머리를 굴렸던 것이 자신이 참으로 한심스럽다
그런 유진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드라마 할 시간이 됐다고 협상 테이블에서 슬슬 벗어나려는 두사람
“아 나 정도전 봐야 되는데 시간 너무 뺏겼다, 이제 엄마 찾지마”
“나도 나도 같이 봐”
“잠깐만, 저기요! 두 분 잠시 멈추세요”
이번에도 축지법 사건처럼 가만히 앉아서 물집을 얻고 어기적 걸어 다닐 수는 없는 유진은
자리를 뜨려는 행동을 취하는 지은과 운몽을 급하게 붙잡아 본다 조금 아니 사실 많이 구차하고 찌질하게 보이지만
그래도 어떠한가 중요한 정보라도 알고 넘어가야 하는게 유진의 처지인데..
“또, 왜”
“저기 아니 언제가는지는 말해주셔야죠!”
유진의 간절한 외침에 지은과 운몽도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교환을 하다 운몽이 유진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아 .. 그렇지 그거는 말해줘야지 언제냐면..”
-
[2014년 3월17일]
“하아- 피곤해.. 유진이도 그렇지?”
신발장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부모님을 보고도 유진은 말없이 가방만 챙겨든다
“..아직도 화났나봐 유진이“
운몽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하는 지은 손으로 입을 가리기만 하면 안들릴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손으로 가리기만 했을 뿐 목소리 자체가 커 다 들릴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걸까?
“화 안났는데요”
물론 화가 다 풀렸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사실 유진의 기분이 저기압인 이유는 새로운 방에 아직까지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
잠에 깊게 들지 못해 피곤함이 배가 된 상태라 그런거지만 그렇다고 해명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마저도 귀찮다는게 유진의 정확한 기분이다
“오..화 났네 났어”
“..여보… 유진이 건들지마..”
면전에서 놀리는 지은과 점점 굳어가는 아들을 보는 운몽은 좌불안석이라 말려본다
“웃긴다 누구때문인데.. 나는 남편 편들어준 죄 밖에 없어 미움은 내가 받고 있구만”
“듣고 보니까..엄마 말씀이 맞네요, 아빠?”
“ 하하하 뭘 따지고 그래!”
“웃지마 짜증나, 너도 입술 집어넣어라 확 썰어버린다”
지은의 무서운 으름장에 슬그머니 입술은 집어 넣지만 그래도 자존심은 살아있어 창가로 고개를 훽 돌려버리는 유진
이상하게 첫 등교라는 압박감 때문인지 멀미가 밀려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니 진짜 토사물이 올라오는 착각까지 한다
“..아 토 할 것 같아..”
“자 얼른 나가자 유진이 데려다주고 여보도 내려다주고 나도 가야되니까 얼른!”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이 이제 막 시작되는 유진은 설레임보다는 걱정이 가득하게 쌓여간다
“자 출발합니다!”
운전석에는 운몽 조수석에는 지은 그리고 뒷좌석에 기대 앉아있는 유진
쉬지않고 수다를 떨며 깨가 쏟아지는 앞좌석 커플과 비교되게 말없이 창문만 바라볼 뿐이다
‘시끄럽다..노래나 듣자’
이어폰을 찾기 위해 가방 속을 뒤적거리지만 유진 손에 잡히는 것 중 이어폰으로 추정되는 물체는 없다
“아씨…저 내려주세요”
“뭐야 왜!”
“무슨일이야 아들!”
“뭐 좀두고왔어요..먼저가세요”
“아이 뭐라고..언제 돌아가니 그냥 가”
“아니에요 필요해서 그래요 그냥 내려주세요 두 분 먼저 가시고요”
어쩔 수 없이 갓길에 차를 세우자 뒷좌석 문이 열리고 유진이 내린다 내심 전학 오고 첫 등교날이라 학교 앞까지 데려다 주고 싶었던
운몽은 아쉬움 가득하게 유진을 바라보지만 냉정하게 차문을 닫고 달려가는 유진만 애처롭게 본다
“아들 그만 보고 출발, 부인 데려다주면 되지! 자 출발 구기사!”
-
“늦을 것 같은데..뛰자”
다행스럽게도 차를 타고 얼마 가지 않고 내려서 집까지 거리가 멀지는 않지만
여유롭게 걸어가기에는 시간이 조금 촉박할 것 같아 유진은 가볍게 뛰기 시작한다 지나치는 모든 사람들이
큰 길 방향으로 향하는데 혼자만 반대방향을 향하는게 아직은 이곳에 적응하지 못 하고 있는 본인 처지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에 잠겨 골목길 코너를 돌아가다 마주오던 사람을 피하지 못 하고 그대로 충돌해버린다
“아!!”
“아…죄송합니다”
“아이씨..따가..”
크게 부딪힌 바람에 넘어져있는 유진 또래로 보이는 여학생과 앞에서 어쩌지 못하고 엉거주춤 서있는 유진
같이 부딪히고 왜 유진 자신만 멀쩡하게 서있는건지 조금 억울하다
“괜찮으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다른 생각을 하는 바람에 일어나세요”
사과와 함께 손을 내미는 유진 잡고 일어나라는 뜻으로 내민건데 보니 여학생 손에 핏방울 맺혀있다
인상을 쓰던 여학생은 유진의 손은 신경도 쓰지않고 급하게 핸드폰 시간을 확인하고는 벌떡 일어난다
“어..우 다리는 괜찮으신가보네..”
머쓱하게 내민 손을 슬며시 접어 뒤로 숨겨버리는 유진 호의를 거절 당한 것 같은 느낌에 살짝 머쓱한 유진인데
“..헐 늦었어!”
머쓱한 유진 따위는 개의치 않다는 듯이 유진을 어깨로 살짝 밀치고 가던 길로 바로 달려가는 여학생은 뒤를 돌아
멍하니 여학생만 바라보고 있는 유진에게 한마디 말만 남기고 갈뿐이다
“괜찮아요! 가던 길 가세요 아저씨!”
..아저씨..? 누가봐도 교복을 입고있는 자신에게 아저씨라고 부른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이름 모를 여학생
“찰과상 입혔다고 엿먹이나..참나”
황당한 유진은 무심코 고개를 숙이다 여학생이 두고 떠난 명찰을 주워든다
“임채이…”
세로보다 가로가 더 길쭉한 작은 명찰에 박혀있는 이름 ‘임채이’
“..자기 이름도 두고갔네”
유진은 명찰을 주머니에 챙겨들고 집이 아닌 학교로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2)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않아 2
[2014년]
“아오..다리 아파 버스로 몇정거장이야 이게”
유진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고 떠난 여학생 아니 채이는 본인 가슴에 명찰이 없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지각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학교 정문을 통과하지만 양쪽에 나열된 선도부와 가운데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학생 주임 선생님에게 뒤꽁무니를 잡히고 만다
“어이어이 니 이리온나 몇학년 몇반~?”
“네? 저요 왜요? 저 오늘 아무것도 안했는데”
“그렇겠지 아무것도 안했겠지 그래서?! 명찰도 없겠지 학생이라는 자식이 니 삼학년이지? 그냥 쓰고 가라 가서 한 글자라도 외워라”
“명찰이요?”
주임 선생님 말에 다급하게 본인 가슴팍을 내려보는데 명찰이 있어야 할 곳에는 당연히 명찰이 없다
명찰은 지금 유진 교복 자켓 안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헐…미친..저요..3학년 2반 임채이..”
“헐…어디서 욕이야 씨 내일 명찰 챙겨서 나한데 오면 조용히 넘어간다 알겠지, 자 이제 출발 오라이 빨리 가라 임마”
도대체 명찰은 어디서 떨군거지 오늘 아침 집에서부터 일진이 사납더니 넘어지고 학주한데 걸리기까지 운수가 좋지 않은 채이는
오늘 하루 몸을 사리며 행동하리라 다짐한다
[지잉-]
그때 핸드폰을 쥐고있던 오른쪽 손에 진동이 느껴지고 털을 잔뜩 세운 상태에 채이는 발신인 확인 후 인상을 잔뜩 쓰며 전화를 받는다
[가업을 이을 남자 임성민]
“응? 갑자기?, 뭐요”
[야 ! 어디야 너]
“이새끼가.. 너 왜 다짜고짜 소리질러 맞을래?”
다짜고짜 소리지르는 상대방에 분노 게이지가 가득 차있는 채이도 지지않고 상대방에게 소리지르며 말한다
[아니? 안맞을건데? 아 어디냐고 지금 배수정이랑 버스,이제 내려 기다려]
“기다리기는 개뿔..나는 말이지 정문이기는 하지만 3초뒤 떠날 예정, 뛰던지 아니면 그냥 교실에서 봐 끊는다”
[야..야 임채이!]
[뚝-]
전화 예절이 살짝 모자라 보이는 채이인데도 수화기 너머 발신인은 기분 나쁜 내색은 없고 기다려달라고 애처롭게 부르기만한다
“아침부터 전화를 하고있어 얘는 맨날 천날 보는 사이에”
통화를 끊고 운동장을 계속해서 가로질러가는 채이는 마주치는 학생들과 인사를 하고 오른손에 또 진동이 느껴진다
확인하지 않아도 누군지 알 것 같은 기분에 채이는 가던 길 또 한번 멈춘다
[지이잉-]
[가업을 이을 남자 임성민]
“아 얘는 왜 자꾸 전화질이야”
전화를 받지 않고 화면만 바라보던 채이는 한숨 한번 크게 내쉬고는 왔던 길을 되돌아 걸어간다
성가셔 죽겠다는 표정으로 성민 전화를 끊어버리고서는 마중은 나가주는 이들의 우정이 참으로 희한하다
“야!!”
큰 마음 먹고 데리고 가려고 했건만 먹은 마음이 무색하게 이미 정문에서 뛰어오고있는 성민과 뒤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수정
“..뭐야 축지법은 언제 연마한거야?”
3초 뒤 떠날 예정이라고 하니 잘 타고 있던 버스 창문에서 뛰어내리기라도 한건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투블럭머리를 휘날리며 채이 앞에 짠하고 나타난다
“야! 임채이 좀 기다리라고!”
급하게 뛰어온 티를 내는지 숨을 헉헉 거리며 뛰어오는 성민 뒤에 빼꼼 보이는 수정은 늘 그렇듯 핸드폰 게임만 열중하며 자신만의 페이스로 천천히 걸어온다
“뛰어오니까 더 못생겼네”
발에서 불이라도 나오는 것처럼 달려 채이 앞에 도달한 성민은 그제서야 멈춰서 숨을 실컷 고른다
“땀 흘리는 남자가 멋있다던데.. 아 진짜 개힘들어”
“남자 나름이지 투블럭이나 어떻게 하고서 달리던가 뭐야 날개야 거기서 부스터가 나오나”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성민의 양쪽 머리를 날개처럼 쥐어잡는 채이에 성민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피해본다
“아 머리 만지지마! 이씨..”
“야 날아봐! 날아봐!”
“아이 미친 진짜”
“거 되게 까탈스럽네 수정 하이”
“어 하이, 나 지금 이거 깨야되거든? 안부는 교실에서 나누자고 친구”
“멋져 야 이제 걸어”
“좀 같이가면 어디가 덧나냐?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가는게 얼마나 큰 이벤트인지 니가 아나!”
쑥스러움을 모르는 건지 정신이 나간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후자에 가까운 것 같아 보이는 성민은 운동장 한 가운데에서
큰 엉터리 사투리로 사랑을 외친다 지나가는 사람 모두 큰소리에 쳐다보다가 목소리의 주인공이 성민임을 알고는
금방 고개를 돌려 가던 길 간다
“야야. 너 사투리 못 하는거 여기 사람 다 알아 다 , 쳐다보잖아 조용히해”
“뭐래 완전 네거티브구만 나 부산에서 8년째야”
“사투리 개 못해 너 서면에서 그래봐봐 너 돌팔매질이 뭔지는 알아?”
수정 성민 채이는 초등학교 고학년 비슷한 시기에 서울에서 전학을 온 아이들이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었고
그 결과 사투리는 늘지 않아 무척 어설프다 그렇지만 성민은 꿋꿋하게 부산 말씨를 쓴다
혹여나 사투리 어설프게 따라한다고 돌팔매질 당할까 늘 채이와 수정이 주의를 주지만 그 말을 들어먹을 성민이 아니다
가만히 성민 말을 듣고있던 채이는 답답한 마음 가득 담아 한숨 쉬며 말을 빠르게 쏟아놓는다
“좋아하기는 개뿔, 야 내가 지금 한 8년째 말하는데 너는 나를 좋아하는게 아니라 그시절 나를 잠깐 좋아했던 너에게 취한거라니까?”
“니가 뭘 알아! 내 마음을”
그 말을 듣고 성민도 지지않고 말한다 이런 다툼이라고 말하기도 유치한 대화를 두 사람은 8년째 이어나가고
옆에서 듣는 수정은 이제는 더이상 이 일에 끼어들지 않는다
더 이상 운동장에서 싸움하며 아침을 보낼 수 없던 채이와 수정은 성민을 옆으로 툭 밀어 넣고는 걷기 시작하고
덩치 값 못하듯이 툭 밀려나는 성민은 두 사람을 졸졸 쫓아간다
“야! 내도 데리고 가라고! 좀 ”
“어머 미친놈! 야 뒤돌아보지말고 걸어 수정아”
고개를 앞으로 고정하고 경주마 마냥 앞으로만 걸어가는 채이와 옆에 수정 그러다 수정은 뒤를 돌아 성민을 바라본다
“야 너 나한데 하트 좀 보내”
“이씨, 현질을 하던지 왜 자꾸 나한데 보내래”
“헤헤, 좀 보내라 임마 아 지금 엄마 아들이 또 나를 제꼈잖아!”
“야! 엄마아들이 제낄 수도 있지 너를 제끼고 먼저 태어나셨는데 그정도야 뭐”
“그러니까 내가 지금 열받는 거야 감히 나를 제끼고 태어난 주제에 나보다 높은 등수에 위치한다고? 말이돼?”
“그래 그래라 꼭 갈 때는 니가 먼저 가라?”
“어 그러려고 일단 그 전에 너를 내 손으로 직접 보내고 가려고 가자”
풀이 한참 죽어있더니 하트가 필요한 수정과 몇마디 만담을 이어가더니 금세 살아나서는 수정고 어깨동무를 하고 신이나서 달려간다
“참..단순하다 우리 좋아 아주”
-
“안녕하세요..”
이상하게 주눅들게 되는 교무실 안에는 반 열쇠를 챙기러 들어오는 주번들과 이미 출근해 업무를 보는 선생님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그 사이로 쭈뼛거리면서 들어온 유진은 아무도 말을 붙여주지 않아 머쓱해서는 문 쪽에 붙어서 서있는다
그런 유진을 말없이 주시하고 있던 중년의 남자 선생님은 드럼스틱을 한 채만 들고 유진에게 슬그머니 일어서 다가와 말을 건낸다
“니는 누구..?”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선생님에 놀람도 잠시 누군가 말을 걸어줬다는 사실에 조금 감격스러워 숨이 트이는 유진 자신을 소개한다
“아 저는 이번에 전학온 구유진이라고 합니다,교무실로 오라고 하셔서”
“아아, 서울에서 온다는.. 흐음..”
유진의 소개에 단박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가자미 눈을 뜨고는 유진을 머리부터 발 끝까지 스캔하기 시작한다 잘못 한 거 없는 유진이지만 이상하게 긴장이 되서 슬그머니 발을 얌전히 붙이며 똑바로 선다
“근데..니는 고삼이나 되서 와 서울에서 여까지 전학을 왔지? 니 뭐 혹시 아들 괴롭히고 그랬나”
유진이 전학 온 이유를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선생님이 황당한 유진은 생각을 한다
내가 전학을 오게 된 이유…
‘부모님이 해안가 산책하러 부산을 가신대요’
“아니요? 그냥 이사를 가게되서 온건데..요?”
“그래? 뭐..다 컸으니까 괜히 학교 분위기 흐린다거나 하지마라 알겠지?”
남은 기간 동안 조용히 내신 성적 잘 지키다가 다시금 서울로 떠나고 싶은 유진도 선생님 못지 않게 정말 바라는 일이다
“저도 조용히 잘 있다 가고 싶습니다”
“그래? 뭐 니가 그렇다면 됐고.. 보자.. 니가 민석쌤… 어 오셨네 민석쌤! 여기 전학생 받아요”
가자미 눈 선생님이 이제 막 교무실에 들어오 남자선생님을 손을 흔들며 부른다 그러니 웃으며 빠른걸음 으로 유진과 가자미 눈 선생님에게 다가온다 유진보다 10살 정도 많을까 싶은 젊은 남자 선생님이
새로운 유진의 담임선생님인 모양이다 가까이서 보니 꽤 훈훈하게 생긴게 여학생들 한데 인기가 있을 것 같다
“안녕하세요 수학선생님, 전학생은 이제 제가 맡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수학.. 별론데?’
하필이면 가자미 선생님이 본인이 취약한 과목 담당이라니 비호감의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된다
“네 그러세요, 마 니는 수학시간에 보자이?”
“네! 들어가세요! 선생님”
싹싹하게 인사를 하는 민석 옆 유진은 조용히 고개만 살짝 까딱해서 인사를 건낸다 그런 유진의 머리를 푹 눌러 90도 인사를 만드는 선생님
“인사는 90도, 아 나는 담임이야 좀 소개가 늦었다”
“안녕하세요”
“그래그래 너는 구유진..오늘부터 3반이고 나는 믿기지 않겠지만 한국사 담당이고 이름은 이민석”
“믿어지는데 왜요?”
“어라? 딱 봐도 몸이 좋으니까 체육선생님 같지 않니?”
“아…”
본인 입으로 저런 말을 내뱉다니… 뭐라고 반응을 해줘야 할 지 모르겠는 유진은 눈에 빛을 거둔채 입꼬리만 스윽 올리고 민석을 바라본다
“야, 농담이야 임마”
이상한 표정을 짓고있는 유진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 치면서 자리에 앉은 민석, 유진은 옆에 의자가 놓여있지만
그냥 가만히 서있는다
“아..농담 하하..웃겨요”
민석은 농담을 하고는 씩 웃으며 3-3반이 쓰여있는 출석부를 펼친다 펼쳐진 출석부를 번호 순으로 쭉 1번 부터 증명사진과 아이들 이름이 하나씩 나열되어 있다
“증명사진은 모레까지 가지고 오면 되고 우리반 반장은 여기 8번 ... 그리고 얘,임성민 얘가 좀 나내는데 애는 착해”
민석이 가리키는 손가락 끝에 걸쳐있는 증명사진에는 성민이 머리에 뭔가를 잔뜩 바르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환하게 웃고있다
얼굴만 보아도 그가 짓고있는 미소만 봐도 요주의 인물임이 확 느껴지는 유진 이 아이와는 가까이 하지 않는게 좋을 것 같다
‘와 얘는… 멀리하자’
사진인데도 부담스러워 눈 마주치기 겁나는 유진은 성민을 피해 재빨리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려는데
“어..?”
성민 밑에 억지미소를 짓고는 머리를 하나로 묶어 올린 여학생의 사진을 보고 왜인지 반가운 기분이 드는 유진은
자연스럽게 여학생에게 모든 감각이 집중이 되어 민석의 말이 한 귀로 들어와서 나머지 한 귀로 곧바로 빠져나간다
“와..”
‘반갑네’
사진 밑에 적혀있는 이름 세글자 [임채이]
그리고 지금 유진 자켓 주머니 안에 있는 채이의 명찰, 오늘 아침에 의도치 않게 찰과상을 입혔던 그 학생이 오늘부터
유진과 한 반에서 생활을 하게 되다니 이정도면 재밌는 우연이라고 말 해도 될 것 같다
“우리는 보통 아침에 자습을 하고 큰 이슈들은 게시판이나 반장이 고지를 할거야…야 너 내 말 듣니?”
“..네?! 아 죄송합니다 ”
“됐다 지금 뭐 새로운 학교에서의 삶이 기대되서 심장이 막 쿵쾅쿵쾅 거릴텐데 내 말이 들어오겠냐..가자”
“가요? 어디를요?”
“가긴 어딜가 교실 가야지”
타이밍 좋게 예비종이 울리고 복도에 남아있던 학생들은 요란스럽게 각 교실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쌤 안녕하세요 ”
“어 빨리들 들어가라”
[3-3]
“다 왔다 우리반”
3학년 3반 앞에 나란히 선 유진과 민석
앞 문을 뚫고 나오는 요란한 소리.. 3학년 3반은 고삼 아이들이 모여있는게 맞나 싶을 정도로 시끄럽다
“..우리반 애들은 고등학교 삼학년이 아닌 것 같애, 초등학교 삼학년 수준이야”
시끌시끌한 소리를 듣는 민석은 많은 의미가 담긴 듯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하하..”
“들어가자 우리 망아지들 만나러”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9년 인생 중 가장 임팩트 있는 등장인물을 유진은 이제 만나게 된다
(3)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3
아이들이 하나 둘 등교한 교실 가운데 분단 제일 마지막 자리에 앉아있는
채이는 책상에 푹 엎드린채 종아리를 터뜨리나 싶을 정도로 세게 주무르기 시작한다
“너 뭐하냐? 종아리 터뜨릴라고 그러냐?”
채이 책상 옆에 쭈그리고 앉은 성민은 가만히 눈이 땡그랗게 이쁜 고양이 마냥 올려다보면서 정작 입에서 나오는 말은
듣는 채이 성질을 살살 긁기 딱 좋은 말을 내뱉는다
“시비걸지마라 쥐나서 푸는거니까..”
“참 쟤 시비를 거는건지 걱정을 하는건지 아직도 모르겠어”
“시비라니 걱정이지 애정을 듬뿍 담은 걱정”
“아 내일 알 제대로 박힐 것 같은데 ”
[쾅!]
“야야 부시겠다 진정해”
생각해보니까 분이 차오르는 듯 책상을 박차고 일어서는 채이 여전히 다리는 아프지만 마음에 차오르는 짜증을
걷잡을 수가 없는 채이
“..그걸 왜 가지고 가셨다니”
“아니.. 딸내미가 모아둔 현금을 들고 튀는 사람이 어디있냐고 아침에 개놀랐다니까 진짜? 내가 봤을 때는 돈만 가직 바로 나갔어 아 짜증나 이렇게 부모가 내 발목을 잡는다”
“그러니까 내일은 내가 내줄게 우리랑 너네 집으로 갈게”
“야 됐어 내가 또 어렸을 때 보고 자란게 있어서 절대 빚은 안지잖아 괜찮아 내일 알바비 나와..그냥 분해서 그렇지 엄마때문에”
“야 우리 사이에 그게 빚까지 가냐 ”
“내 소신이다 존중해줘라”
사실 수정 말대로 하루만 신세를 지는 게 좋지 않은 거는 아니지만 한번 빚지기가 어렵지 두번 세번은 아주 쉬워지는걸
부모님 덕분에 뼛 속 깊이 알고 있기에 수정에 고마운 선의를 한사코 밀어낸다 그런 채이가 수정은 조금 서운하기는 하지만
속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기에 오늘도 수정이 채이를 이해하고 넘어간다
그때 무언가 생각에 잠겨있는 성민이 조심스럽게 입을 떼며 두사람 대화에 끼어든다
“..근데 말이야.. 너 어제 나한데 매점에서 빵 빌려가지 않았냐?”
“어…머나”
“뭔 놈의 소신이 이렇게 줏대가 없이 바뀌냐?”
“그거는 그냥 적선..? 정도로 생각 할 수 없을까?”
“적선은 씨.. 됐어”
“그런데 진짜 너네 어머니 너무하셨다 채이야..”
“그러게 말이다 야 태어난 순간부터 인생이 장르물이야 아오 짜증나..나는 청춘물 밖에 안보는데”
“야야 채이야 그래도 혹시 모르지”
“모르기는 뭘 몰라 내 앞으로의 인생?”
“아니.. 말고 좀 지금부터 너의 인생이 상속자들, 응칠 같아질 수도 있지 여주 임채이 남주는..”
“나!!”
“남자주인공이 임성민이라면 계속 장르물로 갈 것 같은데 피해자로.. 음..”
“거 진짜 말을..”
채이 말대로 부모님 덕분에 인상적인 장르물 드라마는 열심히 찍어왔으니 지금부터라도 하이틴 청춘물이 펼쳐지기를 간절히 바래보지만 지금 채이에게 더 크게 신경쓰이는 것은
아까부터 자기 자리에 앉아있는 성민 때문에 자리에 앉지도 못 하고 있는 원래 자리 주인 지완이 신경이 쓰일 뿐이다
“야 임성민 됐고 너는 니자리로 좀 꺼져”
[드르륵]
“다들 자리에 앉아라”
“쌤 안녕하세요~”
3반의 담임선생님 민석이 교실 앞 문을 열고 들어오니 서둘러 자신 자리로 찾아가는 학생들 수정도 본인 자리로 돌아가는데
성민만 그 자리 그대로 동작이 멈춰있다
그때 민석의 눈에 유난히 크게 들어오는 성민의 화려한 짱구 뒷통수
“어이 임성민이 내가 니 자리는 내 바로 앞으로 일년 내내 지정해뒀는데 왜 또 거기 가있지?”
“아 쌤~ 이제 천천히 자리로 가려고 하잖아요 참 성질만 급하셔서 쩝”
“하나…둘…”
민석의 채근에도 느릿느릿 행동하는 성민이 아주 익숙한 듯 민석이 조용히 카운트를 세기 시작하니 그제서야
몸을 빠르게 일으켜서 멋없게 달려간다
“아 가요!!”
“셋…!”
“짜잔 다 왔잖아요 어우 성질도 급하셔”
애꿎은 성민이 차지하고 있던 채이 앞자리 원래 주인 지완이 이제야 본인 자리를 찾아 앉는다
지완에 등을 톡톡 치는 채이 지완도 고개를 돌려 채이를 바라보는데
“미안 다음부터는 절대 못 앉게 할게 쟤가 생각이 짧아서 그렇지 나쁜애는 아닌데..아니다 나쁘다 미안”
“..나도 알아 괜찮아”
대답을 하고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리는 지완, 성민이 나쁜 사람이 아닌 거는 알지만 가끔 생각이 너무 짧게 행동 하니까
오해 받을까 대신 사과를 하지만 지완도 다 알고있나보다 하여간 성민은 하는 짓에 비해 미움을 덜 받는 아주 운 좋은 놈이라고 채이는 늘 생각한다
“자 이제부터 나만 말할거야 조용 오늘 조회는 뭐 별거는 없고 여기..뭐야 어디있어 얘”
성민 때문에 한차례 늦어진 전학생 유진의 소개를 이제야 시작하려는데 옆에 있어야할 유진이 보이지 않는다
옆을 보고 사람을 찾는 시늉을 하는 민석에게 앞자리에 앉아있는 여학생이 묻는다
“누구요?”
“어 전학생 그런데 내 옆에 와 없지?”
민석이 애타게 찾고있는 유진은 닫혀있는 앞문에 가로막힌 것 처럼 복도에 덩그러니 남겨져있다
“누군지는 몰라도 얼빠진 놈이네..그죠 쌤”
“어 성민이 니같네 기다리봐”
얼빠진 놈 유진이 이 자리 이 곳에 서있는 이유는 민석이 습관처럼 문을 닫고 홀로 들어가서는 안에서 성민과 만담을
펼치느라 들어갈 타이밍을 놓쳐버렸기 때문인데 그로 인해 성민에게 얼빠진 놈이라는 말을 듣게 되다니
[드르륵-]
“너는 왜 여기있냐 내 옆에 딱 붙어있어야지..주인공 병이야? 빨리 들어와”
“아니 저는..혼자 들어가시길래..네..”
억울한 마음 꾹 눌러담지만 그럼에도 계속 비집고 나오는 억울한 마음에 해명을 하려다가 그냥 들어가기나 하자 라는 마음으로
드디어 교실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드르륵-]
“뭐야 누군데 쟤는”
“전학생이가 지금?”
유진의 예상했듯이 전학생의 등장에 반 아이들은 놀라며 한마디씩 툭툭 던지고 성민과 수정 채이도 유진에게 시선이 쏠린다
“잘생겼는데?”
큰 키에 하얗고 누가봐도 훈남 아니 그냥 잘생긴 인간 그 자체에 유진을 보고는 몇몇 학생들은 잘생겼다고 수근거린다
‘다 들린다..’
“헐 야 임채 임채!?”
퍽퍽한 반 분위기에 싱그러운 유진이 등장하니 수정도 신이나서 쿵짝을 맞춰줄 채이를 부르기 시작하지만
이미 채이는 수정이 부르는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유진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모든 감각은 유진만을 향하고 있다
“찾았다 남주”
“아 따가워..씨..”
본인도 모르게 박수를 치려다 상처가 따가워 잠시 멈칫하는 채이는
지금 손에 남은 찰과상이 남게 된 이유가 유진인 줄은 꿈에도 모르는 채이와 그런 채이가 수정은 이상하기만 하다
“뭐라는거야 쟤는..”
혼이 나간 채이를 제외하고 다시 소란스러워진 교실 분위기에 민석이 가지고 있던 출석부로 교탁을 살짝 내려친다
힘을 크게 쓴 것 같지도 않지만 꽤 큰 소리에 아이들 목소리가 점차 줄어든다
“야야 다들 조용, 나만 말할거야! .. 어 여기는 다들 알겠지만 우리반에 새로운 얼굴이다 ..뭐하노 소개 안하고”
“이번에 서울에서 전학 오게 된 구유진이야 1년 잘 지냈으면 좋겠다”
[짝짝-]
유진의 자기소개가 아주 간략하게 끝나고 몇몇 학생은 박수로 유진을 환영해주고 유진도 반을 한번 훑어보는데
교실 맨 뒷자리에 시선이 멈춘다 생판 모르는 사람 천지인 3반에서 유일한 아는 얼굴
‘임채이다’
높게 묶은 머리와 아침과는 다르게 조금 순해보이는 얼굴 표정까지 이상하게 채이가 반가운 유진은 또 한번 주머니 속 명찰을 만지작 거린다
“아 서울 사람 잘생깄네 진짜!”
“그러게 영호야 너는 머리 안자르면 내가 어떻게 한다고 했지? 조회 끝나고 내려온나”
“아 쌤! 저만 그런거 아니에요 저어기 쌤 앞에 아이 좀 보세요 왁스도 발랐어요 점마는”
“뭐라는데! 갑자기 왜 나를..! 쌤 저 아니에요 저 안발랐어요 진짜에요”
“..성민아 나는 이제 더이상 너한데 말할 힘도 없다..자 반장이 게시판에 붙여놓은 수시 전형 각자들 확인하고 임성민 김영호 니네는 조회 끝나고 내려온나”
오늘만은 민석에 눈에 들지 않게 조용히 입닫고 있던 성민인데 혼자는 못 죽는다는 식으로 본인을 끌어들인 영호가
무척 원망스럽고 또 억울하기만 하다 성민이 보기에는 전학생 교복과 머리도 그닥 단정하지 않은 점 투성이인데
앞머리도 긴 것 같고 바지 통도 줄인 것 같고 무엇보다 채이가 원하는 외적 이상형에 너무 부합 아니 그자체에
유진이기 때문에에 한동안 아이돌 때문에 눌러져있던 성민의 라이벌 의식을 다시금 일깨운다
“그리고 유진이 너는 저기 채이 옆자리 앉아라 임채이야 손 좀 들어봐라!”
민석과 유진 성민과 다른 아이들까지 채이를 일제히 바라보지만 이상하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냥 멍하니 뭐에 홀린 것 마냥 앞만 뚫어져라 쳐다본다
“아..쟤는 또 왜저러니 그냥 저기 채이 옆자리 가서 앉아라 , 이상 끝 둘 따라서 내려오고”
오늘따라 반 아이들이 유독 말을 듣지 않는지 민석은 한숨만 푹 쉬고는 조회 시간을 급하게 마무리한다
“차렷 경례 선생님께 인사”
“감사합니다”
“오야”
민석이 손짓으로 영호와 성민을 콕 집자 영호와 성민이 투덜거리며 민석을 따라 교실을 나가고
고삐 풀린 망아지들은 순식간에 교실을 시끄시끌하게 만든다
전학생이라고 궁금해서 다들 몰려들지 않을까 했지만 그들은 조회시간에만 반짝 유진에게 관심이 있었을 뿐인듯
다들 각자 할 일을 찾아서 한다
학생들에 무관심이 서운하기는 커녕 오히려 너무 고마운 유진은 조용히 본인 자리로 걸어간다
“헐..온다”
유진이 자리로 걸어오는 한걸음 한걸음 , 박자에 맞춰서 요동치는 심장에 채이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을 시켜보려하지만 유진 얼굴이 가까워지자 크게 도움이 되지를 않는다
‘미쳤다 심장 왜 이렇게 뛰어 이대로면 나 할머니 옆으로 가겠는데..’
“안녕?”
어느새 자리에 앉아서 가방을 내려놓으며 채이에게 무심하게 인사를 건내는 유진
순간 채이는 모든 순간이 정지되고 채이와 유진만 남은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인사를 건내다 무심코 본 채이의 손에 있는 상처를 보고 살짝 인상을 쓴다 혹시 채이가 본인을 알아보지는 않았을까
내심 긴장을 했는데 손까지 흔들며 인사하는 걸 보니 전혀 모르는 눈치다 아니면.. 그냥 속이 좋은 단순한 사람이거나
“어..안녕!”
상처가 그대로 남아있는 손을 유진에게 살랑 살랑 흔들며 떨리지만 다정한 말투로 인사를 건내는 채이
앞으로 채이가 평생 잊지 못 할 사람을 채이에 퍽퍽한 열아홉에 만나게 된다
-
[2024년]
캄캄한 방 한켠에서 유진이 악몽을 꾸는 것 처럼 뒤척거린다 식은땀이 온 몸을 적시고 신음 소리만 내뱉다 눈을
번쩍 뜬다 몸을 일으켜 주위를 살피다 꿈에서 벗어난 것을 알게되자 다시 몸에 힘을 빼며 늘어지듯 몸을 눕힌다
눈을 뜨고 있기도 버거운듯 다시 눈을 감고는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한다
“..또..또 개같네 진짜”
(4) 말이 안되잖아(1)
[2024]
“하..”
커튼을 두껍게 친건지 햇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방 한 구석에 위치한 침대에서
유진이 쉽게 잠에 들지 못하는지 계속해서 몸은 뒤척거리고 한숨만 푹푹 내뱉는다
[부스럭-]
자세를 이리저리 바꾸느라 몸과 맞닿는 이불 소리와 유진이 내뱉는 한숨 소리만 제외하면 방 안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방
계속해서 뒤척거리기를 반복하던 유진이 결국 잠에 들기를 포기한건지 이불을 제끼며 일어나다
힘이 빠진듯 다시 몸을 축 늘어뜨리며 몸을 눕힌다
“또… 또 개같은 꿈”
마른세수를 하고 팔을 얼굴에 얹은채 잠시 생각에 잠기는 유진 눈을 감는다
꽤 오랜 시간동안 불면증을 앓고 있는 유진의 불면의 원인은 항상 반복해서 꾸는 어떤 시점의 꿈
머리맡을 더듬으며 핸드폰을 찾는다 전원이 들어오자 화면에 강한 빛에 눈을 찡그리면서 현재 시간을 확인한다
“4시..”
시간은 유진의 예상대로 세시가 좀 넘어 네시에 가까워지는 시간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시간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당직을 했지”
한번 잠에서 깨어나면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음을 아는 유진은 침대 옆 테이블에 놓인 스탠드 조명을 켜 불을 밝힌다
조명이 밝아지자 어두웠던 방이 한결 시야에 확 들어온다
스탠드 조명이 놓여있는 테이블 위에는 각종 책과 노트북이 올려져있고 부모님과 함께 찍은듯한 가족사진 액자와
그 옆에 앨범에도 액자에도 끼워두지 않은 사진 몇장도 보인다 습관처럼 일어나면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유진
“뭐가 좋다고 웃냐”
항상 사진을 보고나면 기분이 한껏 우울해지지만 이상하게 이 습관을 놓을 수가 없다
또다시 우울이 유진을 감싸려고 할 때 쯤 유진은 침대에서 일어나 문 밖으로 나선다
“씻자, 배수정이 말했다 우울은 수용성이라고”
-
“안녕하십니까”
피곤함 가득한 얼굴을 하고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는 유진 그중에서도 강력2팀 사무실로 들어간다
선배형사들로 가득한 곳으로 인사를 하며 들어간다
“왔냐?, 뭐야 얼굴이 뭐 저래?”
파트너이자 선배인 기준이 다크서클로 강력 2팀이 단체 줄넘기를 해도 될 만큼 내려온 유진 얼굴을 보며 놀란다
“오늘은 진짜 얼굴이 오늘내일 하는데?”
자신의 몰골을 너무나 정확하게 알고있는 유진은 손으로 거친 얼굴을 메만지며 기준에게 맞받아친다
“..왜 얼굴로 뭐라고해요 암만봐도 선배보다 낫구만”
“하하하! ..뒤질래?”
늘 피곤함에 찌들어있는 유진을 남모르게 걱정하는 기준은 일부러 유진에게 장난 섞인 시비를 자주 걸면서 컨디션
체크를 하고는 하는데 오늘의 거친 반응을 보니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 것을 확인한다
“오늘도 피곤해보인다”
“좀..그런 것 같아요 잠을 못자서”
“어린 놈이”
“하아..”
오늘따라 더 뒤숭숭했던 꿈 때문에 힘이 아주 쫙쫙 빠지는 것 같은 유진
개꿈도 레빌이 있는데 하필이면 10년전 그 날이 꿈으로 나타나다니 찝찝해서 죽을 것 같다
“야 그래가지고 땅이 꺼질까? 더 단전에서 내뱉어봐 그래야 꺼지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뭐 그렇게 또 빠르게 사과를해 민망하게”
“뭐 어느장단에 춤을 춰드려야..”
“아니 당직은 내가 섰는데 왜 나는 멀쩡한거야”
기준 말에 유진은 기준 책상에 차곡차곡 모여있는 영양제들을 바라본다 눈빛을 느꼈는지 기준이 머쓱하게 입을 연다
“영양제빨 죽인다 진짜 추천해드릴까요 선배?”
능청스럽게 옆자리 동료 형사에게 권하는 모습까지 유진은 기준을 바라보던 눈빛을 거둔다
어쩜 저렇게 능청스러운 사람들만 유진의 곁으로 모여드는건지
“운동하면 잘자요 괜찮아요”
“야 너 좀 잘먹으라니까 운동을 하면 아드레날린 폭발해서 더 잠 안온다니까 선배 말을 들어”
옆에서 떠들어라 나는 일한다 식으로 말없이 보고서 작성을 시작하는 유진
곁눈질로 쳐다보다가 괜히 마음에 들지 않는 기준이 어깨를 한번 세게 치자 그제야 샐쭉 쳐다보더니 입을 연다
“피곤하면 알아서 잠들겠죠, 이거 올려드리면 되죠?”
“어~일해 일해야 잠도 잘 오지 화이팅”
“네 그러니까 선배님도 팀장님 오시기 전에 뭐라도 하는 척 하세요 아까 주차장에 팀장님 차 있던데”
“야 나 방금까지도 일하고 왔어 또 일하러 가야되고 내가 노는 줄 알아 이거는”
“그럼 다행인데 팀장님이 워낙 선배님만 쫓으시니까 저는 걱정이 되서”
“걱정 같은 소리하네 야 보고서 저장하고 옷 입어”
“…일하시라고요”
순간 한심한 마음을 담아 기준을 올려다보는 유진에게 울컥한 유진이 허공에 주먹질을 하더니 이를 박박 물고 말한다
“일하러 가자고 새끼야 지금 누가 너랑 놀러가쟤? 빨리 나와”
“아..현장”
휑하니 먼저 나가버리는 기준을 따라 겉옷을 챙겨입으며 따라가는데
먼저 나가던 기준이 뒷걸음질을 치며 다시 사무실 안으로 슬금슬금 들어오는 모습에 얼떨결에 유진도 그자리 그대로 멈춰선다
“어…어 오셨습니까”
깐족깐족 거리는 기준이 각잡힌 모습으로 누군가에게 인사를 건내길래 유진도 고개를 쑥 내밀어 확인을 하다
곧바로 각을 잡는다
“왜 그러세요?..아 오셨습니까”
시끄러운 기준에 입을 다물게 만들고 유진에게 90도 인사를 받는 그는
바로 강력2팀 서철호 팀장 이하 서팀장이다 좀 화도 많고 성질도 많이 부리지만 그래도 옛날 아저씨들 특징인 건지
마음씨는 착하고 정도 많은 편이다 아..! 머리숱도 아직 풍성한 편이며 참고로 미혼이다
휴무날마다 소개팅 하러 다니는 것은 2팀뿐 아니라 여기 강력계 사람들 모두 다 알지만 성공적인 소개팅을 위해 비밀로 다들 모른체를 해주는데
오늘도 어제와 다르게 반듯해보이는 옷차림을 보아하니 소개팅 약속이 잡혀있는가보다
“너네 어디가냐?, … 구유진 너는 얼굴이 왜 또 그모양이야”
“아..잠을 못 자서”
“잠을 또 왜 못자!?”
“아무래도 우리 후배 유진이가 커서 뭐가 되려는지 아주 밤마다 열심히 업무 보고서를 만드느라..”
“너네 어디가냐고”
기준의 말을 끊으며 한번 더 되묻는 서팀장 누가봐도 기준 말이 길어지는 기미가 보이니까 끊지만
그런 서팀장의 모습을 즐기는 이상한 성격의 기준은 굴하지 않고 발랄하게 묻는 말에 대답을 한다
“아! 저희가 어디를 가냐면요? 바로 현장조사하러 갑니다 뭐 어디서 뭐가 와장창 우당탕..”
서팀장은 열심히 말을 하는 기준과 옆에 가만히 서있는 유진을 지나쳐 걸어가며 또 말을 끊는다
“그래 다녀오고, 구유진 너는 또 나대지 말고 조용히 다녀와”
“제가 또 언제 나댔다고..”
“맨날, 맨날 천날 이새끼야 가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기준이 유진의 팔을 끌고는 사무실을 벗어나고
“그러니까 새끼야 네가 저번에 소매치기 잡는다고 오바쌈바한거 아직도 서팀장님이 미움 받고있는거 알지”
경찰서를 벗어나며 주차 되어있는 차로 이동하는 사이 기준이 유진에게 잔소리를 한다
저번 소매치기 일당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유진이 조금 아니 많이 과격하게 제압을 한 사실에 윗분들로 부터
서팀장이 유진 대신 이것저것 들었던 사실을 말한다
“네 압니다”
“그러니까 좀..”
서팀장이 고맙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유진은 절대 그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지 어느새 입이 또 샐쭉 삐져나오기 시작한다
“어디서 입을 삐쭉거려?”
“아니 그렇다고 제가 범죄자들 한데 예의 갖춰서 대우해야 합니까? 저 그런거 싫은데요”
“뭐래? 내 말은 팀장님 앞에서만 네네 하라고 나가서 니 마음껏 하던지 말던지”
“아…”
“아주 웃겨..지만 잘났어 아주 야 ,키 내놔”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조수석으로 가세요”
어젯 밤 당직을 선 기준을 위해 유진이 신경써서 운전석으로 움직이는데 재빠르게 다가온 기준에게 조수석으로 밀려나는 유진
왜이러냐는 표정으로 기준을 쳐다본다 호의를 베풀었는데 돌아온 것은 몸통박치기라니
“지금 네 얼굴을 보고 차 키를 주면 나는 형사 자격이 없다 좋은 말로 할 때 조수석으로 꺼져”
“잠 못 잔거는 피차일반이니까 조금이라도 젊은 제가..”
[쾅-]
더 이상 말대꾸 하지 말라는 듯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먼저 운전석에 훽 하고 타버린 기준은 여전히 운전석 앞에 멀뚱거리며 서있는 유진에게
창문 틈새로 손을 내밀며 얼른 가라는 듯 손짓을 휙-한다
“얼른 꺼져 조수석으로”
[쾅-]
“나중에 뭐라고 하지나 마세요”
“됐고 네비나 찍어라”
“걱정되면 걱정 된다고 하시지 참 말을 밉게하는 재주가 있으세요”
“어 내가 그 재주 너한데 배웠잖아”
“네네 그렇죠”
“야 그런데 너 진짜 뭐 수면 클리닉 이런 거 안가도 되냐?”
목적지 설정 후 조수석에 기대 앉는 유진에게 기준이 무심하게 말을 건낸다
“네 안가도 됩니다”
“왜? 너 맨날 이상한 꿈 꿔서 못 잔다며 가위인지 뭔지”
“가위는 아니고.. 그냥 개꿈이요”
“어? 너 그 말 취소해 나 반려인이야 개 아무데나 붙이지 말아라”
“아 예 알겠습니다 그럼.. 이상한 꿈”
“알긴 뭘 알아 수면클리닉 가라고 그냥”
“됐습니다 진짜”
완강하게 말하는 유진에게 더이상 권유하지 못하고 운전에 집중하는 기준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며 기준의 말을 다시금 생각해보지만 한번 놓쳤던 사람을 다시 놓치고 싶지 않기에
아직은 꿈 속에서라도 꼬옥 동여메고 살아가고 싶을 만큼에 간절함이 유진에게 남아있다
-
[2014]
[지이잉-]
“어이 임채 전화온다 받아라”
급식을 멋있게 해치운 후 운동장 계단에 나란히 앉아있는 채이와 성민,수정 세사람 다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있고
광합성을 받으며 잠깐의 여유를 즐기는데 채이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음? 누구지? 야 잠깐 이것 좀 먹지마라”
“아싸 공짜로 굴러들어온 캔디바다”
[010-xxxx-xxxx]
성민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낸 후 전화를 바라보는 채이, 저장되어 있지 않는 번호지만 모르는 번호는 아니다
분명 좋은 이유로 걸려오는 전화를 아니라는 걸 채이는 알아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나 2층 아줌마야”
“네 안녕하세요 무슨일이세요?”
[어..아이고 엄마가 또 입구에서 주무시네 몇번을 깨워도 몸도 못 가누고]
“아 진짜요... 죄송합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학교라.”
[어 알지 내가 모셔다 드릴까 해서 전화했어]
“감사합니다..열쇠는 아마 엄마 가방에 있을건데 없으면.. 우편함 한번 확인해보세요. 죄송합니다”
[어 알았어 정말 엄마만 모셔다 드리고 나올테니까 걱정하지말고 어 끊을게~]
“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하-아”
전화가 끊어지고 한숨을 쉬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엄마 때문에 시끄러운 채이 속마음과 다르게 하늘은 쓸데없이
맑고 구름 한 점 없는게 꼭 전화를 받기 전 채이 기분 같아서 그래서 화가 난다
벤치에 몸을 축 늘어뜨리는 채이 쨍쨍한 햇빛에 눈을 계속 뜨고있기가 힘들지만
그냥 계속 올려다 본다 생각을 하면 머릿 속 공기가 탁해져가는 걸 느끼며 계속 채이를 심연으로 끌고 간다
“?”
“뭐해 왜 이러고 있어?”
그때 눈 위로 덮어지는 손바닥 하나 덕분에 하늘은 물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손을 떼어내려는 찰나에
들려오는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에 손을 잡아 떼고 초점을 맞춰서 바라보는데
“ 구유진?”
“하늘 올려다보면 눈만 아프던데”
“헐 대박”
유진이 채이 앞에 나타나기만 했을 뿐인데 기분이 순식간에 환기가 되기 시작하니 스스로도 놀라는 채이와
덤덤한 표정으로 채이를 내려다 보는 유진
“가자 종쳤어”
심연에 끌려가는 듯 했던 채이를 끌고 나온게 유진의 말 한마디라니 스스로도 어이가 없지만 지금 이순간 채이에게
유일한 숨 쉴 구멍이 유진이 되다니 처음 유진을 봤을 때와 다른 느낌에 채이는 혼자 앞으로 걸어나가는 유진을
다급하게 쫓아간다
“유진아 너는 정말 최고야”
“갑자기?”
“방금까지 나 숨을 못 쉬고 있었는데 니가 내 숨을 트여줬어 그래서”
“말을 왜 하다가 말아 얼른 말해봐”
“너한데 반한 것 같지만 부담스러워 할 수 있으니까 말하지 않을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