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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투고

참을 수 없는 소유욕

페이지 정보

작성자 송세인 작성일2021-12-23 조회237회 댓글0건

첨부파일

본문

연락처 010-3170-8279 이메일 dlsans83@naver.com
제목 참을 수 없는 소유욕
- 기획의도
혼인신고 하지 않은 재혼 부부 아래에서 10년을 남매처럼 지냈다가 헤어지게 되면 과연 남매일까 남일까? 사람에 따라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다른 만큼 다르게 받아들인 두 사람이 어떻게 같은 마음으로 돌아서지는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과거, 가정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편안한 현실에 안주하려는 여자와, 헤어짐에 대한 고통으로 마음을 닫고 남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온 남자가 서로 다른 이유로 닫혔던 마음을 깨고 나와 서툰 자신들의 감정을 차츰 정리해가며 소직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관계의 변화에 따라 사람의 감정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부분과, 관계의 변화를 통해 트라우마를 벗어나는 모습을 통해 물 밑에 잠겨 있던 인물을 물 위로 끌어 올려 깨우치게 하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어딘가 한 구석씩 망가져 있는 두 인물이 차츰 서로를 치료해주는 과정을 통해 독자들이 캐릭터들의 성장 과정에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 주요 의도이다.

- 소개 글
남매 관계로 10년을 함께 살았다. 하지만 한 번도 같은 성(姓)을 사용한 적은 없었다. “어차피 우리 남이잖아.” 짙은 키스 뒤로 보인 얼굴은 더 이상 오빠의 얼굴이 아니었다. 낯선 남자의 얼굴. “동생 따윈 집어 치우고 이제부터 내 여자해.” 있는지도 몰랐던 감정에 한 번 빠지기 시작한 주은은 점점 더 깊은 곳으로 손을 뻗었다. “내가 오빠 여자라면 이젠 절대 놓지 마. 다시는 나 버리지 마.”

- 인물설정
남주은(26/여주) : 어린 시절부터 아빠에게 맞고 살아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인물. 일부로 아무렇지 않은 척 겉으로는 당차 보이려고 애쓰지만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해 찬혁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스스로 얽매여서 고생하지만 조금씩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면서 솔직한 제 감정을 표현하게 되는 인물.
강찬혁(31/남주) : 주은을 향한 마음과 이별 때문에 자신의 본래 마음은 닫고 남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온 인물. 주은 때문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상식 밖의 결정을 해 버리는 등 솔직한 관계에 있어 다소 부족함이 많지만 주은을 통해 점차 인간다운 면을 찾아가는 인물.
차예리(28/여조) : 찬혁을 좋아해 주은을 괴롭히는 인물로 뛰어난 외모와 겉으로 보여지는 성격으로 인기 높은 인플루언서. 자신의 채널을 이용해 둘의 관계를 폭로하려하는 독한 성격의 인물.
남창수(54/남조) : 사업 실패 후 알코올중독자로 주은에게 어렸을 때부터 폭력을 행사해 왔고 찬혁이 함께 살던 시절 찬혁에게도 폭력을 휘두른 인물. 사라진 주은을 찾은 뒤 그녀를 다지 찾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찬혁과 거래까지 하는 인물.
정우진(31/남조) : 유일한 찬혁의 친구이자 동업자. 군대 동기로 찬혁이 힘들 때 털털한 성격으로 그를 옆에서 도와주었고, 찬혁의 본 성격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
윤소정(30/여조) : 찬혁이 운영하는 카페의 본점 매니저이며 우진과 연애를 하는 인물로 주은과 찬혁이 잘 이어질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려는 조력자.

- 시놉시스
[기]
8년 전에 헤어진 주은이 갑자기 당분간 찬혁의 집에서 지낼 수 없냐며 찾아온다. 잊고 있었던 그녀에 대한 감정이 다시 피어난 찬혁은 다시 한 번 그녀를 밀어내기 위해 행동하지만 끝끝내 버텨낸 주은에게 결국 참지 못하고 자신의 마음이 담긴 키스를 하고 만다.
오빠라고만 생각하고 있던 주은은 찬혁에게 키스를 받은 주은은 당황함 속에서 사고라고 자신을 설득하려 하지만 한 번 더 이어진 키스에 드디어 찬혁이 자신을 한 번도 동생으로 생각했던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미 오빠로서도 찬혁에게 상처를 받은 주은은 자신에게 한 행동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고 과거에 자신을 버리고 떠난 이유, 그리고 그 여전히 그 이유 때문에 자신을 밀어내려고 했던 것을 듣고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아빠의 폭력에 시달려 더 이상 갈 곳이 없던 주은은 찬혁에게 자신도 확인할 시간을 달라고 하고 찬혁의 집에 계속 머물게 된다.
찬혁의 고백 후 주은을 향한 행동이 조금 더 대범해 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거리감을 좁히지 않은 주은의 모습에 찬혁 역시 더욱 친밀하게 다가가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조금 컨트롤 한다.
며칠이 지나도 주은의 행동이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자 결국 찬혁은 지금 우리가 뭐를 하고 있는 건지 확실하게 정하자고 주은을 다그치고, 주은은 쉽게 잊히지 않는 남매라는 관계와 자신을 밀어내려고 했다고는 하지만 다른 여성들과의 관계가 신경 쓰여 쉽게 찬혁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얘기를 건넨다.
그 말에 찬혁은 1개월이라는 시간적 제안을 낸다. 1개월 동안 자신은 눈치 안 보고 온 힘을 다할테니 그래도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깨끗이 남으로 돌아서고, 만약 마음이 변하면 완벽한 남이 되어 남녀관계를 이어가자는 제안에 어쩔 수 없이 주은은 수락하고 만다.
전과 달리 확실하게 노골적으로 바뀐 찬혁은 주은이 제시한 조건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고 주은에게 행한다.
점점 과감해 지는 찬혁의 행동이 싫다가도 점점 익숙해져가는 자신의 모습에 조금씩 과거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잊게 된다.

[승]
하지만 자칭 찬혁의 여자 친구라고 등장한 예리는 처음에는 주은이 동생이라는 말에 안심을 하게 되지만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는 것을 보고 둘이 관계를 의심하게 된다.
결국 둘이 남매이면서 사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주은과 찬혁의 관계에 위기가 찾아오고, 찬혁이 운영하는 카페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하루아침에 핫플레이스에서 금단의 사랑을 한 범죄자 취급을 당하지만 찬혁은 아무렇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오히려 주은에게 신경 쓸 시간이 더욱 늘어났다고 하면서 그녀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더욱 늘리려한다.
자신을 향해 진솔하게 다가오는 찬혁의 모습도 좋지만, 그가 몇 년 동안 노력해서 이룬 것을 이대로 방치하는 게 마음에 걸린 주은은 자신에게 신경을 그만 쓰라고 하지만 앞으로 2주 밖에 안남은 제안 기간이 끝나면 그 다음에 신경 쓰겠다고 하며 계속해서 카페 일을 등한시 한다.
하지만 주은은 자신 때문에 점점 더 어려워지는 카페의 모습에 결국 참지 못하고 자신이 먼저 사라지면 찬혁이 다시 집중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말없이 찬혁을 떠난다.
갈 곳 없는 그녀를 소정이 몰래 데리고 있고, 찬혁은 주은을 찾기 위해 그녀가 살던 집까지 찾아간다. 찬혁은 보지 못했지만 주은의 아빠인 창수는 찬혁을 알아보지만 아는 체하지는 않는다.
힘들어하는 찬혁은 예상했던 것과 달리 더욱 카페 일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주은을 찾아 나선다.
결국 우진이 주은을 설득하게 되고 주은은 핼쑥해진 모습으로 다시 찬혁에게 찾아간다.
그리고 들은 진정한 사랑을 처음으로 나누게 된다.

[전]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고 찬혁이 그동안 서울 곳곳에서 여러 매장을 운영해오면서 알게 된 단골손님들 중에 영향 있는 인플루언서를 통해 자신들의 관계를 직접 밝히자는 것을 주은이 먼저 제시한다.
얼굴이 알려지는 것에 대해 찬혁이 반대를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해 보겠다며 결국 관계를 솔직하게 밝히고, 의외로 결과는 금단의 사람에서 로맨틱한 사랑으로 바뀌면서 다시 카페의 인기는 올라간다.
본격적으로 둘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남은 1주일동안 여느 연인과 다를 거 없는 것처럼 데이트를 나눈다.
그리고 드디어 한 달이 끝나는 날 찬혁은 주은에게 결정을 하라고 하고, 여태 그와 연인처럼 지내왔지만 막상 그 결정 앞에 서게 되니 망설이게 되지만 결국 그와 연인 관계를 유지하기로 한다.
단순한 동거에서 이제 합방에 이른 둘은 집안 분위기도 주은의 손길이 닿으면서 점점 바뀌어 가고 행동들 또한 서로에게 점점 더 대담해 진다.
이제 계약 없이 완벽하게 연인이 된 둘은 카페 내에서도 솔직한 관계를 보이며 관계를 돈독하게 이어 나간다.
새로 개점을 준비하고 있는 과천점을 찾은 둘은 텅 빈 공간에서 주은이 자기 멋대로 즐겁게 인테리어에 대해 떠드는 모습을 보고는 그 이야기를 찬혁은 잘 기억해 두기로 한다.
그렇게 별 일 없이 사랑을 나누는 나날이 이어진 어느 날, 카페에 갑자기 주은의 아빠인 창수가 등장하면서 주은을 집에 데려가려고 한다. 그리고 하필 그 날 찬혁은 신규 매장 때문에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결]
소정의 연락을 받고 급하게 돌아온 찬혁은 얼굴이 멍이든 채 엉망이 된 모습의 주은을 보고는 당잔 창수를 찾아가려 하지만 주은이 겨우 말린다.
이제는 많이 사라졌던 트라우마가 다시 생겨나면서 자신의 손길에도 움찔 거리는 주은의 모습에 결국 찬혁은 주은 몰래 창수를 찾아간다.
그리고 주은을 다시 만나지 않는 조건으로 창수가 돈을 원하는 것에 동의 한다.
이 사실을 모르고 있던 주은은 갑자기 준비하기로 한 과천점을 포기한다는 말에 이유를 묻지만 알려주지 않고, 뒤 늦게 사태파악을 하고 화가나 나타난 우진을 통해 과천점에 투자하려던 돈을 창수에게 건넨 건을 알게 된다.
주은은 결국 창수에게 가 살면서 한 번도 해 본적 없는 대드는 모습을 보여주다 결국 창수에게 다시 폭력을 당한다.
하지만 이는 주은이 원했던 것으로 몸에 남은 상처를 가지고 그동안 찾지 못했던 경찰서에 직접 찾아가 사실을 말하고 창수를 고발하게 된다.
생각보다 충격이 컸던 주은은 경찰서에서 기절하게 되고 찬혁은 병원에서 누워있는 주은을 보게 되며 스스로를 자책한다.
자신이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었다고 찬혁을 위로한다. 그리고 주은은 검사 도중 의사에게 자신이 유사 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찬혁에게는 비밀로 한다.
날이 갈수록 상처는 사라졌지만 점점 핼쑥해지는 주은의 모습에 찬혁은 이유를 찾으려 하지만 찾지 못하게 되고, 그녀가 이렇게 된 것이 병원에서 퇴원한 뒤라는 것을 알게 되고는 혹시 다른 안 좋은 곳이 있지 않나 병원에 갔다가 주은이 유산을 했다는 소식을 알게 된다.
주은에게 아무 잘못이 없다고 끝없이 보듬어 주며 그녀가 기운을 차리도록 도와준 찬혁은 모든 상황이 끝난 시점에서 그녀에게 자신이 빈 자리 평생 채워주겠다며 고백을 하게 되고 둘은 결혼을 약속한다.

- 내용
1. 불편한 동거

이불을 뒤집어쓴 주은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동생이 방 안에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기어코 또 이렇게 여자를 집에 데리고 온 것은 자신을 사람취급도 하지 않는다는 뜻인가?

‘내 집에서는 내 마음대로 하니까 신경 쓰이는 게 있으면 네가 나가.’

갈 곳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나갈 텐데 그 한 곳이 없는 자신의 상황이 한없이 처량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순진하게 월급을 몽땅 갖다 바치지 말고 일부분이라도 숨겨둘걸.
혹시나 걸렸을 때 감당해야 하는 게 두려워 차마 그땐 그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주은은 베개로 제 머리를 감싸며 더욱 이불 안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집에 들어온 첫날부터 뭔가 자신한테 하는 행동이 쎄하다 했는데 이정도로 무시할 줄이야.
발가락 끝을 잔뜩 오므린 채 아랫배에 힘을 주며 제 몸을 끌어 앉았다.
한시라도 빨리 저 여자가 집 밖으로 나가 신경 쓸 일이 없어지길 바라며.

“…….”

방문을 살짝 연 주은은 얼굴을 반만 내밀고 어두운 복도를 바라봤다.
복도 끝, 닫힌 방문 너머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용히 방 밖으로 나온 주은은 까치발을 들고 천천히 발걸음을 움직였다.

“……!”

문 너머에서 간헐적으로 웃음소리가 흘러나오자 걸음을 멈추고 쉬던 숨마저 참았다.
콧소리 가득한 간드러지는 웃음소리와 그 소리를 집어 삼킬 정도로 무거운 중저음의 조화.
주은의 얼굴이 절로 구겨졌다.
하지만 다시 방으로 돌아가기에는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제발 나오지 마라…….”

다시 천천히 부엌으로 향한 주은은 냉장고 문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열었다.
텅 빈 냉장고에서 먹을 거라고는 언제 사 두었는지 모르는 사과 몇 알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겉이 살짝 쭈굴쭈굴 해져 말라 있었다.

“…….”

선택권이 없는 상황에서 사과 하나를 집어든 주은은 아쉬운 마음에 냉장고 문을 닫지 못하고 구석구석을 훑었다.
그런다고 없던 음식이 생겨나는 것도 아닌데.

“뭐해?”
“힉!”

냉장고 문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깜짝 놀란 주은은 냉큼 문을 닫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오, 오빠.”
“뭐하냐고.”

주은은 상체를 훤하게 드러내고 있는 찬혁의 모습에 움찔 하며 반걸음 더 뒤로 물러났다.
어렸을 때는 그저 마르기만 했는데 언제 운동을 한 건지 잔 근육이 보기 좋게 갈라진 몸은 흠잡을 때 없이 탄탄해 보였다.
하지만 그 모습이 멋있기보다는 징그럽다는 생각이 주은에게는 먼저 다가왔다.

“배, 배고파서…….”
“…….”

싸늘한 찬혁의 시선에 손에 쥔 사과를 허리춤 뒤로 숨겼다.

“내가 준 카드는.”

무심하게 던져 놓고 갔던 카드.
집에서 신세지는 것도 마음에 걸리는데 카드까지 마음대로 쓸 만큼 염치가 없진 않았다.
정말 처량하다 남주은.
카드는 염치없어서 못 쓰면서 냉장고나 뒤지고 있고.

“오빠 뭐해요?”

양 어깨는 훤히 드러내고 이불로 가슴 아래만 감싸 가린 여자가 찬혁 뒤에서 몸을 내밀었다.
흐트러진 머리하며 살짝 지워진 화장까지.
상상만 했던 것을 실제로 눈앞에서 마주한 주은은 표정이 빳빳하게 굳은 채 두 눈엔 경멸의 시선을 담으며 시선을 돌렸다

‘알고 있었잖아 이러고 있을 줄.’

찬혁을 향해 경멸어린 감정이 치솟았지만 그와 함께 가슴을 움켜 짜는 듯 한 고통도 동반되었다.
주은은 그게 자신을 무시한 것에 대한 화라고만 생각했다.
이불을 좀 더 끌어올리며 제 몸을 가린 그녀는 주은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쫓았다.

“누구예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콧소리를 내더니 지금은 가시가 단단히 박혀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주은의 모습을 훑는 시선엔 질투심이 엿보였다.

“동생.”
“동생이랑 같이 살았어요? 친동생?”

그제야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간드러지게 돌아왔다.
주은은 순간순간 변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소름이 끼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친동생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뭐예요 그게.”
“들어가자. 추운데 왜 이러고 나왔어.”
“동생 있는 줄 알았으면 조금 조용히 했을 텐데.”
“신경쓰지마. 어차피 쟤 방에서 들리지도 않으니까. 자 여기 물.”

주은은 뒤통수 뒤로 들리는 다정한 찬혁의 목소리에 얼굴 전체를 구겼다.
다 들리거든요.
저 여자는 알고 있을까.
찬혁의 본 모습을.
정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쌀쌀맞고 냉정한 그의 본 모습을 자신만 알고 있는 것이 억울했다.
방 안으로 들어온 주은은 문을 쾅 닫으며 이불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푸석해진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들어가자. 추운데 왜 이러고 나왔어. 신경쓰지마. 자 여기 물. 싫다 정말. 저 말투.”

주은은 찬혁의 말투를 따라 하며 사과 한 입을 더 베어 물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오물거렸다.

“낯짝도 두껍지. 여동생 보고 저렇게 당당한 저 여잔 또 뭐야.”

자기 같았으면 부끄러워서 얼굴도 내밀지 못했을 것이다.
어떻게 하나같이 저런 여자들만 데리고 오는 건지.
저런 여자들이니 처음만난 남자의 집에 거리낌 없이 오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느새 사과를 다 먹은 주은은 다시 방문을 조용히 열었다.
고요한 복도.

“흐응.”
“……!”

찬혁의 방문 너머에서 들린 야릇한 소리에 주은의 곧은 눈썹이 씰그러졌다.
방 문을 닫고 다시 들어온 주은은 문에 기대앉았다.
마치 자신은 없는 사람 취급하는 둘의 행동에 바짝 약이 오른 주은은 손에 들고 있는 먹고 남은 사과를 내려다 봤다.

“넌 내가 곱겐 못 보낸다.”

살금살금 현관으로 향한 주은은 손가락 끝으로 사과를 후벼 파며 씨 몇 개를 발라냈다.
그리고 현관에 가지런히 놓인 빨간색 구두 안에 씨를 다섯 개씩 밀어 넣었다.
사과 씨는 뾰족한 구두 끝에 쏙 들어가 모습을 감췄다.
작을 소자로도 부족한 소심한 복수였지만 주은은 제가 만들어놓은 작품이 마음에 드는 냥 웃어보였지만 이내 입술 끝이 쳐졌다.



***


역시 사과 한 알로는 부족했나 보다.
배가 고프니 일찍 눈이 떠졌다.
현관에 나가보니 어젯밤 보였던 구두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구두가 있던 옆 자리 바닥에 떨어져 잇는 사과 씨 열 개.

“칫.”

눈치가 없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알았지.
주은은 혀를 차며 터벅터벅 걸어 거실로 향했다.
소파 위에 벌러덩 누운 채 햇빛이 옅게 비치는 천장을 바라보며 한 숨을 내쉬었다.
이 집에 들어온 지도 오늘로써 10일 째.
이젠 정말 얼마 없던 돈도 다 썼고, 먹을 거 하나 없는 이 집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찬혁이 준 카드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 그냥 힘들어도 계속 회사는 다닌다고 할 걸.”

찬혁의 집에 들어오면서 거리가 너무 멀어 포기한 회사가 이제 와서 너무 아쉬웠다.
지금의 배고픔에 비하면 편도 2시간 정도의 거리는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네가 그랬냐?”
“응?”

머리맡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벌떡 몸을 일으킨 주은은 어느새 여전히 상의를 걸치지 않은 맨 몸으로 나와 있는 찬혁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게다가 몸 구석구석에 남아있는 선연한 흔적들.
생긴 것도 고양이 같이 생겼었는데 하는 짓도 고양이 같았나보다.

“옷 좀 입으면 안 돼?”
“보기 싫으면 나가라고 했잖아.”
“…….”

주은은 일말의 대꾸도 하지 못하고 분한 입술만 질겅질겅 깨물었다.

“아직 묻는 말에 대답 안한 거 같은데. 네가 그랬어?”
“뭘,”
“사과 씨.”
“아……. 무슨 사과 씨?”

보기 좋게 뻗은 찬혁의 짙은 눈썹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쌍꺼풀은 없지만 제법 길게 갈라져 큰 눈매를 자랑하는 두 눈은 매서웠다.
날카로운 코끝이 찌를 듯 주은을 향해 있었고, 꾹 다문 입술은 어떤 말을 쏟아낼지 감도 못 잡을 정도로 단단해보였다.

“내놔.”
“뭘.”
“카드.”
“…….”

찬혁은 길고 곧게 뻗은 손가락을 내보이며 그 끝을 주은에게로 향했다.
치사하게 장난 조금 친 거 가지고 카드를 빼앗아 가다니.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카드를 써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 고민이 아주 말끔하게 해결되었다.

“겨우 사과 씨 가지고…….”

찬혁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안 쓸 거면 내놓으라고.”
“응? 사과 씨 때문이 아니고?”
“이름도 모르는 여자 구두에 사과 씨를 넣든 말든 내 알바 아니고.”

그러면서 방금은 뭘 그렇게 추궁한 건지.
예전에도 강찬혁의 저 속은 알다가도 모를 속이었지만 이제는 그냥 모를 속이 되어버렸다.

“방에 있어.”
“쓰겠다는 거야 아니야?”
“아무리 내 사정이 안 좋아도 오빠 카드 막 쓸 정도로 염치가 없진 않아.”
“제 집처럼 들어와서 앉아 있는 건 염치에 해당 없는 일인가 보네.”
“…….”

가슴을 후벼 파는 말만 쏙쏙 골라서 하는 것도 능력이었다.
헤어지기 전만 해도 이러진 않았는데.
처음 만난 것은 18년 전.
주은의 아빠와 찬혁의 엄마가 재혼을 하면서 둘은 한 집에 살게 되었다.
함께 살기 시작한지 10년차로 넘어가던 때, 찬혁은 군대를 가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은의 아빠와 찬혁의 엄마는 헤어지게 되었다.
주은도 그 이후로 찬혁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최근까지만 해도.

“오래 있지 않을 거야.”
“냉장고나 뒤지면서 잘도 그런 소릴.”
“걱정 마. 취업하려고 자리 알아보고 있으니까.”

주은은 방에 들어가 카드를 가지고 나왔다.
그리곤 소파위에 탁 내려놓았다.
소파위에 놓인 카드를 내려다본 찬혁은 눈만 치켜뜨고는 입을 삐쭉 내민 채 뾰로통한 표정을 지은 주은을 쳐다봤다.
어렸을 때는 뭐만 주면 좋다고 잘만 받아먹더니.
찬혁은 카드를 줍는 대신 주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턱을 잡아 세웠다.

“왜, 왜 그래!”
“멍은 다 가라앉은 거 같네.”
“…….”

주은은 고개를 돌리며 찬혁의 손 안에서 고개를 빼내었다.
사람이 준비할 틈도 없이 훅 들어오는 저 거친 손은 시간이 지나도 쉬이 적응이 되지 않았다.

“함부로 사람 얼굴에 그렇게 손 대지마.”
“그건 내가 아니라 너 그렇게 만든 사람한테 해야 하는 말 아냐? 그 아버지라는 사람한테.”
“…….”

주은은 이제 통증은 가셨지만 아직 기억엔 남아있는 한쪽 볼을 매만졌다.
그 동안 다른 곳은 몰라도 얼굴에 손을 댄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집을 나온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오늘 카페에 들려.”
“카페는 왜.”
“11시에 오픈하니까 10시 30분까지 와.”
“그러니까 카페는 왜.”

자수성가로 본점부터 분점 세 개까지, 총 네 개의 카페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찬혁은 월요일이면 항상 본점으로 출근을 했다.
주은은 제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찬혁을 가는 눈매로 노려봤다.
저 넓은 등판때기만큼 마음도 넓으면 좀 좋으련만.

“카드는 왜 내놓으라고 한 거야.”

주은은 여전히 소파위에 있는 카드를 잠시 내려다보고는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카드를 두고 온 곳은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그 자존심이 찬혁의 카페에 찾아가면 어떻게 더 처참히 무너질지 그때까지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2. 어쩌다 취업

문을 열고 들어간 카페는 오픈준비로 한창이었다.
말이 카페지 식사와 와인도 판매하며 프라이빗 룸까지 갖추고 있는 캐주얼 레스토랑에 가까웠다.

“죄송합니다. 아직 오픈 전이어서요.”
“아. 저 손님이 아니라 찬혁 오, 강찬혁 씨 만나러 왔는데요.”

직원들 앞에서 오빠라는 말을 하기가 꺼려졌다.

“대표님이요? 잠시만요.”

사장도 아니고 무슨 대표씩이나 불리고 싶었는지.
주은은 카페 안을 빙 둘러 봤다.
이렇게 큰 카페를 네 개나 가지고 있단 말이지.
그 정도 있으니 서울 한 복판에 방 네 개짜리 제 아파트와 외제차를 끌고 다닐 능력이 되는 것이었다.

“왔어?”

집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부드러운 목소리와 표정에 주은은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속은 잔뜩 구기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찬혁을 쳐다봤다.
정말 저 가식적인 모습은 싫다 싫어.
찬혁의 카페에서 이렇게 직접 마주치는 게 이번으로써 세 번째이지만 세 번 모두 저 모습이었다.
처음 봤을 때는 워낙 오랜만에 만났기 때문에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 알았고, 두 번째 부탁을 하러 찾아왔을 때도 여전히 같은 생각이었는데 이번에는 전혀 달랐다.
저런 모습인 걸 애초부터 알았다면 그 집엔 들어가지 않았을 텐데.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선택권이 없었다는 사실은 여전했다.

‘연기대상감이야 정말.’

주은은 일부러 얼굴을 차갑게 굳히고는 냉랭한 말투를 내보였다.

“왜 오라고 그랬어?”
“소정 매니저. 잠깐 이리 와볼래요.”

찬혁은 방금 주은이 왔다는 것을 자신에게 알린 직원을 불렀다.
제 할 일은 다 했다는 생각에 다른 일을 하기 위해 몸을 돌리던 소정은 다시 찬혁의 옆으로 다가왔다.

“왜요. 대표님?”
“남주은이라고해요. 내 동생.”
“대표님 동생이요?”

성이 다른데 사촌 동생인가.
소정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주은을 바라봤다.

“오늘부터 얘 일 좀 가르쳐달라고 부탁 좀 하려고.”

눈꼬리 살짝 내리며 부드럽게 웃어 보이는 얼굴에서 부드러운 어조가 흘러나왔다.

“일이요?”
“일?”

소정과 주은이 동시에 놀라 소리쳤다.

“저번에 직원 한명 더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 얘기를 들어서. 그래서 데리고 왔어요.”
“오, 오빠.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일이라니.”

설마 이런 식으로 일이 흘러갈 줄이야.
남에 염치를 건드리는 방법도 참 다양하지.
카드에 이어 일자리까지, 그래도 따지고 보면 집에서 재워주는 것부터 일자리 제공까지 나름 오빠 노릇은 톡톡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방법이 영 글러먹었다.

“내가 언제 오빠한테 일자리 알아봐 달라고 했어?”
“뭘 또 그렇게 빨끈하고 그래. 마냥 집에서 취업준비만 하고 있는 게 보기 그래서 준비 기간만이라도 가볍게 알바라도 하라고 부른 건데. 알바하러 오라고 했으면 안 왔을 거잖아.”

찬혁은 당혹감이 서린 얼굴을 하곤 말했다.
보기 그렇다는 식으로 좋게 말하기는 했지만 그 말에 의미를 주은은 알고 있었다.
집에서 자신을 보는 찬혁의 시선.
눈만 마주치면 생기 없는 눈동자로 한심스럽다는 듯 깔보는 그 콧대 높았던 눈빛.

“필요 없어.”

돌아서서 나가려는 주은의 팔을 찬혁이 잡아챘다.

“주은아. 잠깐만.”

그렇게 다정하게 부르지 말라고.
난감해 하며 직원을 슬쩍 돌아보는 표정까지 아주 완벽했다.
아마 찬혁의 집에서 살고 있지 않았다면 이 모습이 본래의 모습이라고 자신도 깜빡 속아 넘어 갔을 것이다.
주은은 그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완강하게 버텨 잡은 찬혁이 오히려 바싹 다가왔다.

“네 돈으로 네 배 채울 기회 주는 거야. 줄 때 받아.”

귓가에서 낮은 음성으로 소곤대는 찬혁의 목소리에 주은의 뒷목이 뻣뻣하게 섰다.
얼음을 칼로 긁어내도 이보단 따뜻한 소리가 날 것이다.

“당장 취업한다고 해도 어차피 나갈 상황은 못 되지 않나? 아니면 그 인간 있는 집에 다시 들어가려고? 당분간 지금처럼 지내면서 내 일이나 도와. 싫으면 나가고.”

집에서 지내는 것을 이렇게 협박의 용도로 사용해도 되는 건가.
하지만 찬혁의 집을 찾아온 것은 주은의 결정이었고, 그런 주은을 받아들인 것은 찬혁의 선택이었다.
그가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했다.
그리고 요 며칠 본 바로는 정말 내쫓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그럼 왜 처음에 자신이 집에 가도 된다고 했을 때 단번에 허락한 건지 그 저의가 궁금했다.

“…….”

주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사늘한 표정으로 멀어져가는 찬혁의 얼굴을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금세 부드러운 표정으로 돌아온 찬혁은 소정에게 이리 와 보라며 손을 흔들었다.

“오늘은 일단 자리 한 군데 앉혀 놓고 분위기 파악하는 정도로 시작하는 게 어때요?”
“네? 네. 그렇게 할게요.”
“너도 알았지?”

거부할 수 있는 선택권은 주어지지도 안았다.
주은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눈치를 살피며 다가오는 소정의 모습에 억지로 표정을 풀며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제 목적을 다 이룬 찬혁은 그대로 매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쪽 일은 해 보신 적 있으세요?”
“네? 아니요. 한 번도…….”
“잘할 것 같아 보이는데 너무 긴장할 필요 없어요.”

슬쩍 주은의 전신을 훑으며 끄덕여 보인 소정은 주은을 빈자리로 안내했다.

“여기 앉아서 매장 분위기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런치 때랑 디너 때랑 많이 다르기는 한데 대표님이 다른 말씀은 없으셨으니 우선 점심때는 여기서…….”

주은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이 보이는 소정이 자신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이 느껴졌다.
표정이나 말투 하나하나가 기본적으로 서비스 마인드가 박혀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과하게 공손했다.
역시 대표님 동생이라서 신경이 쓰이는 걸까.

“뭐 마실 거라도 좀 드릴까요?”
“마실 거요? 저 아이스라떼…….”
“네. 금방 가져다 드릴게요.”

거의 손님대접을 받으며 앉아 있던 주은은 소정이 아닌 찬혁이 직접 음료를 들고 오자 저도 모르게 눈매가 가늘어졌다.

“7,000원. 일당에서 뺀다.”

굳이 직접 들고 오는 이유가 단번에 나왔다.

“뭐? 왜 이걸 일당에서 빼. 그리고 무슨 7,000원이나…….”
“너 손님 아니야.”
“아까 그 분이 준다고 했단 말이야.”
“이제부터 거절하는 법도 배워. 잘 됐네. 너한테 필요한 거였는데.”
“…….”

탁 소리 나게 잔을 내려놓고 돌아서는 찬혁의 뒤통수에 그대로 커피를 던지고 싶었다.
저 꼴 안 보려면 정말 하루라도 빨리 그 집에서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어떻게 8년 만에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 있는 건지.
강산도 변할 시간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동생을 참 거칠게 대했다.

“드럽고 치사해서…….”

주은은 신경질 적으로 잔을 들고는 빨대를 입에 머금고 그대로 쭈욱 빨아들였다.
열불이 나던 속이 시원한 음료가 들어오니 조금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이게 7,000원이라고?”

주은은 한 번에 1/3이나 없어진 잔을 들어 보고는 콧방귀를 꼈다.



***


의외로 점심시간에 직장인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샐러드며 파스타, 리조또 등 직장인들이 점심으로 먹기엔 다소 거리가 먼 메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바쁘게 돌아가는 매장을 보며 주은이 단숨에 눈치 챈 것은 테이블을 담당하는 직원들.
남자들만 온 테이블은 여직원이, 여자들만 온 테이블은 남직원이 서빙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

그리고 어김없이 직원들이 서빙을 하고 돌아갈 때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은 그들의 뒷모습을 힐끔 거렸다.

‘그래서 이렇게 선남선녀들만 직원으로 뽑은 거였네.’

처음 마주한 소정부터 다른 직원들까지 스타일에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모두 빼어난 외모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려 손님들을 응대하는 찬혁의 모습까지.
확실히 눈이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요즘 젊은 스타일에 맞춰 모던하게 꾸민 인테리어부터 보기 좋게 플레이팅 되는 음식들까지.
그야말로 비쥬얼의 집합체 같은 곳이었다.

“저렇게 눈웃음을 쳐 대니 안 넘어 오고 배기나.”

손님을 대하는 찬혁의 모습은 단연 돋보였다.
큰 키와 더불어 비율까지 좋은데다 흠잡을 때 없이 바른 자리에 바른 모양으로 자리 잡은 눈, 코, 입 때문에 모습만 보면 그야말로 완벽했다.
그 얼굴로 부드럽게 웃어 보이며 여자 손님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직접 음식을 건네는 것도 모자라, 듣기 좋은 중저음으로 하나하나 설명까지 해 주니 어느 누가 집중을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어땠어요? 분위기가.”

런치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다가온 소정이 맞은편에 앉았다.

“생각보다 바쁘네요. 평일이라 손님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월요일이라 적은 편이예요. 디너 때는 더 많아질 거예요.”

확실히 이보다 손님이 더 많아진다면 지금 인원으로 모두 커버하기에는 힘들어 보였다.

“매니저님 점심 먹으러 가요.”
“응? 응. 주은 씨라고 했죠? 주은 씨는 점심 어떻게 할래요? 지금부터 교대해 가면서 점심 먹으러 가는데.”
“아. 저는…….”

따라가서 같이 먹기에는 불편했다.
하지만 아침도 거르고 지금까지 먹은 거라곤 라떼 한잔 밖에 없어서 아까부터 배가 심하게 고픈 상태였다.

“먹고 와요. 오늘은 내가 챙길 테니.”

어느새 다가온 찬혁이 소정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아. 네. 그럼 식사 맛있게 하세요.”

소정이 사라지자 금세 또 저 차가운 표정을 내보인다.
이쯤 되면 주은한테만 일부로 저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법도 하지만 집에 있을 때 항시 저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을 봤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버린 상태였다.

“기다려.”
“얼마나.”
“나 올 때까지.”

그리고 다시 매장 안으로 들어간 찬혁은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20여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찬혁의 한 손에는 파스타가 담긴 그릇 하나가 들려 있었다.

“먹어.”
“오빠가 만든 거야?”
“…….”

대답 없이 맞은편에 앉아 빤히 쳐다보는 모습에서 눈을 떼고는 포크를 슬쩍 집어 들었다.
요리까지 직접 하는 줄은 몰랐는데.
그런데 웬일이지. 이렇게 직접 음식까지 해 주고.
주은은 포크를 쿡 찍어 적당히 면을 집어 돌돌 말고는 입 안에 쏙 집어넣었다.

“음.”

저도 몰게 콧소리가 나왔다.
고소하고 진득한 치즈의 향이 입 안에 착착 달라붙었고, 씹기 좋게 익은 면과 살짝살짝 씹히는 베이컨이 식감을 더해줬다.

“17,000원.”
“뭐?”

한 입 더 입에 넣으려던 주은은 그대로 포크를 공중에서 멈춘 채 찬혁을 쳐다봤다.
설마 이것도 일당에서 깐다는 소리는 안하겠지.

“학습능력이 없네. 합쳐서 24,000원.”
“지금 장난하는 거지?”

흔들림 없이 자신에게 딱 박혀있는 저 짙은 눈동자를 보니 절대 장난이 아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일자리 준다고 해서 앉아 있었더니 졸지에 24,000원이라는 빚이 생겨버렸다.
그것도 자신은 눈곱만치도 원치 않았던 것들로 인해서.

“먹어.”

뚝 떨어진 입맛에 포크에 손이 갈 리가 없었다.
그런 주인의 마음을 알지도 못하는지 뱃속에서 가열차게 꼬르륵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번 음식이 들어가니 더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입 댔으니 남이 먹지도 못해. 안 먹어도 17,000원이야.”
“…….”

주은은 찬혁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포크를 팍 접시에 꽂았다.

“접시 25,000원 짜리야.”

설마 깨지기라도 한 거야?
깜짝 놀라 접시를 내려다 봤지만 다행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담아두기 위해 입과 눈을 꽉 닫은 주은은 포크 잡은 손을 파르르 떨었다.
일단 먹자. 먹고 생각하자.

“저리 가. 혼자 먹게.”
“다 먹으면 주방으로 그릇 가지고 와.”

주은은 돌아서는 찬혁의 뒤를 향해 포크 끝을 찔러 보이고는 제 앞에 놓인 파스타를 내려다 봤다.
17,000원.
까짓것 국물 하나 남김없이 깨끗하게 먹어주겠어.
주은은 포크로 푹푹 떠서 입안에 쑥쑥 집어넣었다.
그 와중에도 파스타가 너무 맛이 있어서 더욱 자존심이 상했다.


3. 삼중인격자

“주은 씨. 음료 정도는 서빙 할 수 있겠죠?”

소정의 말대로 디너는 그야말로 전쟁 통이었다.
조용한 음악에 분위기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서 직원들의 소리 없는 전쟁이 이어졌다.

“여기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분위기 좋게 데이트 하는 두 남녀 앞에 각각 맥주 한 잔씩 내려놓은 주은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상냥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거의 모든 테이블에서 음료 주문이 이루어지다보니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첫 날부터 갑자기 일하느라 힘들었죠?”
“네. 조금…….”

저도 모르게 솔직한 심정이 튀어나왔다.
소정은 그 마음 이해한다는 듯 눈매에 안타까움을 묻어내고 웃어보였다.

“소정 매니저. 애들 마무리하고 들여보내요. 오늘도 고생했어요.”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대표님.”
“가자.”
“응? 응.”

주은은 급하게 받았던 앞치마만 얼른 풀었다.
어디에 둬야 하나 손에 들고 방황하는 사이 소정이 다가와 손에서 쓰윽 가져갔다.

“고생했어요. 내일 봐요.”
“네.”

내일보자는 말에 정말 이 곳에 취업을 했구나 하는 것이 실감이 났다.
문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찬혁의 모습에 주은은 종종걸음으로 달려갔다.
주은이 나올 때까지 문을 잡고 있던 찬혁은 그녀가 나오자마자 휙 앞질러 가며 카페 앞 개인 전용주차장에 주차를 해 놓은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나 저를 두고 혼자 출발할까봐 불안해진 주은은 냉큼 달려가 조수석에 올라탔다.

“집 앞에 내려줄게.”
“오빤 집에 안가?”

이 시간에 또 어디를 가려고.
설마 이틀 연속 집에 여자를 데리고 오려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항상 하루건너 하루는 카페 문 닫는 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왔었다.
주은의 질문에 대답대신 웅장한 배기음으로 답한 찬혁은 그대로 핸들을 돌려 차를 움직였다.

“내일은 다른 지점으로 갈 거니까 혼자 알아서 출근해.”
“혼자?”
“소정 매니저가 일 봐줄 거야.”

오늘 하루 종일 자신을 챙겨준 소정의 모습이 떠올랐다.
본점을 총괄하는 총괄매니저.
따지고 보면 자신의 직속상관이나 다름없었다.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한 차는 지하주차장으로 향하지 않고 아파트 정문 앞에 멈춰 섰다.

“늦게 와?”
“…….”

슬쩍 고개만 돌리며 내려다보는 찬혁의 눈동자는 대답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어차피 대답을 바라고 질문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주은은 그대로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문을 닫기 무섭게 출발하는 차의 뒷모습을 노려본 주은은 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꼬르륵.
이놈에 배는 시도 때도 없이 밥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저녁 먹을 시간 없이 바쁘게 일하던 와중에도 주방에서 챙겨주는 음식을 간간히 먹었는데 그걸로는 만족이 안 되었다.

“집에 먹을 것도 없을 텐데.”

아파트 입구에 편의점이 보이긴 했지만 당장에 가진 돈도 없었다.
처량한 신세에 한숨을 쉬고 집에 들어온 주은은 곧장 텅 빈 거실로가 소파에 털썩 들이 누웠다.
자기 방 방바닥에 대충 깔린 이불보다 소파 위가 훨씬 폭신했다.

“하. 배고프다.”

홀쭉해진 배에 손을 얹고 고개를 푹 기댄 주은의 눈에 아침에 두고 갔던 찬혁의 카드가 보였다.
저 카드만큼은 절대로 쓰지 말자.
그렇게 아침에 다짐했건만 배고픈 상태에서 눈앞에 보이니 그걸 또 그냥 무시하기도 힘들었다.
더군다나 지금 이 시간이면 배달하기도 늦지 않은 시간.

“싼 거 하나만 시켜 먹을까.”

그러다가도 고개를 흔들고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당연히 어제와 전혀 다를 바 없는 텅 빈 냉장고.
주은은 슬쩍 고개를 돌려 소파위에 놓인 카드를 다시 한번 바라봤다.
모르겠다 정말.
쓰라고 줬으니 원하는 데로 써 준다 한번.
그리고는 바로 배달앱을 열어 배달료까지 10,000원에 해결되는 음식을 주문했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 음식을 받고 결제를 한 주은은 흥이나 식탁위에 음식을 깔았다.
그때 핸드폰 진동이 울리며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뭐지 이 시간에.”

일단 음식 셋팅부터 끝낸 주은은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10,000원도 일당에서 뺀다. 34,000원]

이렇게 되면 처음에 자신에게 카드를 준 본심이 의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빚을 만들어서 일하는데 부려먹으려 했던 건가.
하필 트집을 잡는 게 돈이고 그것이 음식이랑 연결이 돼서 때마다 밥맛을 없게 만드는 건지.
주은은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쌀국수를 힐끔 내려 보고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빚이면 어때.”

탁 소리 나게 젓가락을 뗀 주은은 한 젓가락 듬뿍 떠 후후 불고 입 안에 가득 집어넣었다.
부드럽고 따끈한 면발이 고기 한 점과 함께 입안에 가득 들어오자 와구와구 씹으며 사이사이 배어나오는 구수한 국물의 맛을 신나게 즐겼다.
후루룩 후루룩.
혼자 있기에는 너무 넓은 집 안에서 주은의 면발치는 소리만 구석구석으로 흘러갔다.



***


“여기가 찬혁 씨 집이예요? 좋다.”
‘설마…….’

텔레비전을 보면서 적당히 소화를 시키느라 조금 늦게 누웠는데 막 잠이 들려는 찰라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게다가 어제 들었던 목소리와는 다른 여자 목소리까지.

“이거 여자 신발이네요?”
“동생이랑 같이 살고 있어요.”
“동생이요? 그럼 지금 집에 있는 거예요? 좀 그렇다 그건.”
“괜찮아요. 한 번 잠들면 업어 가도 모르는 애라.”

모르긴 뭘 몰라.
지금도 이렇게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다 듣고 있구만.
주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고 또 어떤 대단만 말을 하나 궁금해 문 앞에 서 귀를 바짝 가져다 댔다.

“그래도 신경 쓰여요.”
“나한테만 신경 쓰는 것도 벅찰 텐데요.”

도대체 저런 말을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럽게 할 수가 있는 거지.
숨소리 들리지 않게 작은 한숨을 내쉰 주은은 고개를 자신의 귀를 문에 더욱 바짝 가져다 대었다.

“…….”

구두굽이 바닥을 디디는 소리와 몸이 어딘가에 쿵 하고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뭔가 바스락바스락 거리면서 그 사이에 간헐적으로 들리는 찐득하고 끈끈한 접촉음.

“하아. 여기서 이러지 말고 찬혁 씨 방으로 들어가요.”

주은은 잔득 상기된 얼굴로 호다닥 이불 위로 올라가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단단하게 닫힌 문이 복도와 방을 완벽하게 분리하고 있었지만 거리상 코앞에 있을 그 둘의 움직임은 소리를 타고 그대로 전해졌다.

“신경 쓰인다면서요.”
“방금 찬혁 씨가 한 키스가 더 신경 쓰여요.”
“다행이네요. 지금부터 신경 쓸게 더 많아질 텐데 괜찮겠어요?”
“그게 다 찬혁 씨랑 관계있는 거라면 얼마든지요.”

목소리만 들어선 어제 그 여자보다 꽤나 차분한 것이 훨씬 여성스럽게 느껴졌는데 그런 목소리로 저런 말을 하니 더욱 자극적이고 야릇하게 들렸다.
물론 주은에게는 고통스럽기 매한가지였다.

‘빨리 가라. 빨리 가라. 가서 문 꼭 닫고 제발 나오지 말아라.’

어제까지만 해도 참고 버틸만한 수준이었는데 이렇게 이틀 연속 이런 상황을 마주하니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았다.
벌서부터 내일은 또 어떤 여자를 데리고 와서 어떤 느끼한 말을 뚝뚝 흘려댈지 걱정이 되었다.
문 너머 멀리서 문 닫는 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주은은 긴장감에 저 몰래 참고 있었던 숨을 길게 뿜어냈다.

“알았어. 간다니까. 갑자기 오늘 왜 그래? 아니야. 가는 중이야.”

겨우 긴장을 풀고 있던 주은은 갑작스럽게 카랑카랑 울리는 여자 목소리에 흠칫 놀라 닫힌 문 쪽을 쳐다봤다.

“알았어. 끊어. 간다고.”

콩콩콩 발소리에 이어 소리 없는 찬혁의 움직임이 그 뒤를 따르는 것이 느껴졌다.

“미안해요. 여기까지 와서.”
“어쩔 수 없죠. 집에서 들어오라고 하는데. 근처까지 태워 줄까요?”
“괜찮아요. 기분도 그렇고. 그러고 보니 연락처도 못 받았네요.”

내심 다음번 만남을 기대하고 건넨 말 같았는데 그 뒤로 그녀가 원하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기회가 되면 또 보겠죠. 오늘 봤던 곳에서.”

저런 식으로 잘도 넘어간다.
장담하건데 어딘지 모르지만 오늘 저 여자를 만났던 곳에 다시는 안 갈 것이 분명했다.
한동안 잠잠한걸 보니 여자가 아쉬워서 바로 나가지 못하는 것 같은데 그래봤자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그럼 다음에 기회 되면 또 봐요.”

씁쓸한 목소리가 문을 뚫고 전해지니 얼굴도 못 본 그녀가 주은은 내심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하필 걸려도 저런 인간한테 걸려서.
카페에서 보이는 부드럽고 자상한 모습이라면 연락처를 줬거나 떠나는 모습까지 보러 나갔을 테지만 한 밤에 여자를 대하는 찬혁의 모습은 먹을 수 있는 것은 먹고, 못 먹는 것은 가차 없이 버리는 늑대와 같았다.
그래도 주은을 대하는 것 보다는 훨씬 부드러우니 대함에 있어 순위만 따지고 보면 주은이 제일 밑바닥에 있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괜히 뿔이 난 주은은 현관문 닫히는 소리에 방문을 슬그머니 열고 얼굴을 내밀며 현관 앞에서 몸을 돌린 찬혁을 쳐다봤다.
웃옷은 어쨌는지 그새 또 벗은 꼴이다.

“실패네.”

무슨 생각에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평소처럼 속이 답답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말이 신경이라도 긁은 걸까.
성큼성큼 다가와 살짝 열고 있던 문을 손바닥으로 확 밀며 열어젖힌 찬혁은 움찔 물러서는 주은의 팔뚝을 낚아채며 끌어당겼다.

“까불지 마.”
“……!”

감정이라곤 하나도 실리지 않은 차가운 무표정으로 툭 하고 내뱉은 짧은 말이 주은의 가슴에 화살촉처럼 푹 들어와 박혔다.

“아, 아파.”

털썩 주저 않은 마음과 팔 전체로 느껴지는 고통에 미간을 잔뜩 찌푸린 주은은 찬혁의 손목을 잡고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한번 만 더 이딴 식으로 까불거리면 그 자리에서 바로 쫒아낼 줄 알아. 알았어?”

그냥 조금 약 올린 것뿐인데 갑작스럽게 성을 내는 찬혁의 모습에 주은은 반사적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잔뜩 공포에 질린 주은의 표정에 퍼뜩 정신을 차렸는지 날카롭게 치솟아있던 눈썹 끝을 내린 찬혁은 그녀에게서 손을 떼고 방 밖으로 나갔다.
홀로 남은 주은은 새빨갛게 손자국이 난 자신의 팔뚝을 매만지며 텅 빈 문 너머를 촉촉한 눈길로 쳐다봤다.

“…….”

턱이 덜덜덜 떨려 이빨이 부딪히면서 탁탁탁 소리를 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순간 찬혁에게서 느꼈던 두려움은 몇 년간 아빠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한 극심한 공포였다.
주은은 양 어깨를 감싸 안고는 그대로 이불 위에 무릎을 꿇고 털썩 주저앉았다.

“쯧.”

방에 돌아온 찬혁은 방금 전까지 주은의 팔뚝을 잡았던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면서 혀를 찼다.
생전 연락도 없어서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것도 모자라 왜 이렇게 사람 속을 긁어대는 건지.
다 잊은 줄만 알았는데 왜 다시 나타나서.
찬혁은 그대로 침대 위에 몸을 누이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왜 나타나서 사람 복잡하게 만드는 거야 남주은.”


4. 성이 다른 남매

‘여태 먹여주고 재워줬더니 그 돈 주는 게 아까워?’

높이 떠오른 손이 제 얼굴로 날아드는 순간 주은은 두 눈을 꼭 감았다.

“…….”

벌떡 몸을 일으킨 주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동안 멍하니 허공만을 바라봤다.
손바닥으로 제 얼굴을 비비며 이마에 묻은 땀을 훑어내고는 다시 털썩 몸을 뉘었다.
어젯밤 마주한 찬혁의 모습 때문일까.
밤새 뒤척이며 제대로 잠들지 못했는데 겨우 잠들었다 싶었더니 또 악몽이다.

“몇 시야.”

7시를 막 넘어가는 시간.
몸을 일으키고 방 밖으로 나가려던 주은은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어제 마주한 찬혁의 모습이 눈앞에 다시 한번 아른거렸다.
등줄기가 서늘해져 자신의 양 어깨를 감싸 안은 주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그런 꼴까지 당해야해.”

이제는 제법 면역력이 생기면서 자동으로 깡다구도 늘었지만 그래도 찬혁의 모습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기는 했다.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 할까. 아니면 그냥 한 마디 확 해버려?’

자신이 잘못하지도 않은 일에 이렇게 주눅 들면서 사는 것은 더 이상 사양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방에 쳐들어가 따지고 싶었지만 그래도 받아준 정이 있다고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이게 세입자의 서러움인가.
주은은 어떤 얼굴로 마주해야 제 마음을 은연중에 전달할 수 있을지 생각하며 조용히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

반쯤 열려있는 찬혁의 방.
괜한 호기심에 슬쩍 방문 앞으로 다가간 주은은 열린 문틈 사이로 방 안을 훔쳐봤다.

“뭐야. 없네.”

언제 나갔는지 이불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찬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이른 시간이면 매장에 나갈 시간도 아닌데 어딜 간 거지.
새벽까지 뒤척이는 동안 찬혁이 나가는 기척은 느끼지 못했으니 잠깐 잠든 그 순간에 나간 게 분명했다.
슬그머니 방 안으로 들어선 주은은 시원한 박하향에 살짝 숨을 들이마셨다.
이 집에 들어온 이후로 한 번도 들어와 본적이 없는 방.
반쯤 열린 문 너머를 힐끔 훔친 주은은 까치발을 들고 조용히 움직였다.

“지는 이렇게 좋은 침대에서 좋은 이불 덥고 자면서 나한텐 그딴 거나 던져주고.”

이불을 매만지며 방과 연결된 드레스룸에 들어간 주은은 괜스레 걸려있는 옷들은 손으로 한번 쓱 훑었다.
깔끔하게 걸려 있는 셔츠와 재킷, 그리고 바지들.
죄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명품브랜드들 뿐이었다.
서랍 하나를 열어보니 티셔츠들도 차곡차곡 보기 좋게 개어있었다.

“명품 숍이 따로 없네.”

뭐하나 흐트러짐 없이 딱 각이 잡힌 옷들을 뒤로 하고 욕실문도 슬쩍 열어봤다.
바닥에 남아 있는 물기.
저녁에 집에 들어와서 한 번 씻고, 아침에 나가기 전에 한 번 씻고.
부지런도 하셔라.
화장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니 이 방의 분위기와 퍽 대조되었다.
밤새 뒤척인 덕에 퀭한 눈과 부스스한 머리, 푸석푸석한 생얼.
한숨을 푹 내쉰 주은의 눈에 서랍이 들어왔다.
남자의 방, 거기에 찬혁의 방이라는 이유만으로 넘쳐흐르는 호기심에 슬쩍 서랍을 잡아 당겼다.

“…….”

뜯지 않은 새 화장품들.
하지만 주은의 눈에 보인 건 구석 끝에 살짝 삐져나온 사진 한 장이었다.
끝까지 다 열리는 서랍이 아니라 손을 집어넣어 뒤적뒤적 사진을 꺼낸 주은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거…….”

언제 찍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사진.
그 사진 안에는 찬혁과 자신이 손을 꼭 붙잡고 나란히 서 있었다.
그 뒤로 아빠와 끝까지 엄마라고 부르지 못했다 아줌마가 서 있었다.

“나 중학교 막 들어갔을 땐가.”

앳돼 보이는 얼굴은 방긋 웃고 있었고, 반대로 찬혁의 얼굴은 별 표정 없이 담담해 보였다.

“이런 걸 여태 가지고 있었네.”

사진 상태가 썩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세월은 흔적인지 여기자기 구겨지기도 많이 구겨졌고 너덜너덜했다.
마치 오래 방치된 것처럼.
이렇게 다 함께 찍었던 사진이 주은에게는 없었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은 주은은 다시 제 자리에 사진을 넣었다.

“슬슬 준비해 볼까.”

찬혁의 방을 나온 주은은 처음 자신이 들어갔을 때 열려있었던 딱 그 만큼 문을 열어 놓았다.



***


“친동생이에요?”

주은에게 하나하나 기본적인 부분을 알려주던 소정이 대뜸 물었다.
찬혁이 한 번도 동생에 대해서 얘기한 적도 없었지만 성이 다르다는 것도 신경 쓰였다.
말하기 꺼려하는 부분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결국 궁금증에 못 이기고 일부터 저질렀다.

“네? 친동생은 아니고요…….”

굳이 들춰내고 싶지 않은 과거였지만 그래도 설명해 두는 게 앞으로 편할 것 같았다.

“저의 아빠랑 찬혁 오빠 어머니랑 재혼하셨었거든요. 그래서 10년 정도 같이 살았었어요.”
“아…….”

소정은 눈치 빠르게 모든 것이 과거형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대표님이 잘해주죠?”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소정은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네?”
“워낙 직원들한테 잘 해주시고 매너도 좋거든요. 좋겠어요. 저런 오빠 둬서.”
“…….”

뭘 모르시는 말씀.
도대체 얼마나 밖에서 자신의 이미지 관리를 했길래 이렇게 좋은 소리가 나올 수 있는 걸까.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지만 괜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 그저 가벼운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런치가 시작되면서 주은은 두 테이블만 우선 전담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다른 테이블은 신경 쓰지 않고 붙어 있는 두 곳만 신경을 쓰면 되니 크게 어려울 것은 없었다.

“처음 하는 것 치고 잘 하네요.”
“그런가요. 너무 긴장해서 제대로 잘 했는지 모르겠어요.”
“잘 했어요. 주은 씨 생긴 게 귀여워서 손님들이 힐끔힐끔 하던데요?”
“네? 설마요.”

주은의 긴장을 조금이나마 풀어주기 위해 장난으로 건넨 말이긴 했지만 정말로 힐끔 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매니저님. 식사하러 가시죠.”
“응. 잠깐만. 주은 씨도 같이 갈래요? 뭐 좋아하는 거라도 있어요? 내가 사줄게요.”
“네? 아뇨 괜찮은데…….”
“가요. 어제 나오긴 했지만 오늘이 정식 첫날이잖아요.”

또 거부하기에는 배가 너무 고프기도 했다.
어제는 찬혁이 챙겨주긴 했지만 오늘은 챙겨줄 사람도 없고, 주변에 뭐가 있는지도 몰라 혼자 먹게 되면 난감하긴 했다.

“초밥 좋아해요?”
“네?”

소정이 말한 메뉴를 듣는 순간 주은은 남아 있던 망설임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가장 좋아하는 메뉴.
얼굴이 부드럽게 펴지는 주은의 표정에 소정은 잘싹 웃어 보이며 그녀의 팔을 잡아 끌었다.

“가요.”

소정과 함께 남직원 둘, 여직원 하나, 주은까지 5명은 카페 근처에 있는 작은 초밥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몇 살이에요?”

건너편에 앉은 여직원이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다른 직원들도 궁금했는지 소정까지도 주은을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저요? 26살이요.”
“26살? 진짜? 20대 초반인줄 알았는데. 저랑 동갑이네요.”

조막만한 얼굴은 단발머리 때문에 더 작게 느껴졌다.
게다가 피부도 하얗고 눈까지 커서 평소에도 어려 보인다는 말은 많이 듣기는 했다.

“근데 어떻게 그렇게 말랐어요. 평소에 관리 하는 거예요?”
“아뇨.”

말 그대도 잘 못 먹어서 마른 것이었다.
뼈대가 얇은 것도 한 몫 하긴 하지만 속 편하게 밥을 먹은지 오래 되기도 했다.
드디어 주문한 초밥이 나오자 주은의 눈망울이 반짝였다.
이 얼마 만에 영접하는 초밥님이신가.
맛있는 거 먹으라며 특초밥을 주문해 준 소정 덕에 광어 지느러미부터 성계알까지 종류가 푸짐했다.

‘일단 성계알부터.’

크기가 크지 않아 작은 입에도 쏙 들어갔다.
입천장으로 부드럽게 느껴지는 성계알과 혀 위로 포스르르 흩어지는 밥알, 씹을수록 성계알의 고소한 맛과 담백한 김의 맛이 새콤달콤한 밥과 어우러지며 행복한 조화를 이뤘다.

“맛있어요?”

저도 모르게 눈까지 살짝 감고 콧소리를 낸 주은은 자신들을 보는 직원들의 시선에 흠칫 놀라며 얼린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표정을 감췄다.

“네…….”

그 모습에 제법 귀엽게 비춰졌는지 남직원 둘의 시선에 잠신 주은의 얼굴에 머물러 있었다.
오랜만에 기분 좋게 배를 채우니 힘이 절로 났다.
그래도 한 번 해봤다고 조금은 긴장도 풀리고 익숙해져서 그런지 디너 때는 일하는 것이 조금은 더 수월했다.

“오늘 수고했어요. 내일 도망가거나 할 거 아니죠?”

마지막까지 혼자 남아서 마감을 하는 소정이 막 나서려는 주은에게 인사를 건넸다.
생각보다 즐겁게 일을 했던 하루.
오랜만에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니 머리도 제법 맑아졌다.

“아니에요. 내일 뵙겠습니다.”

특히 자신보다 4살이나 많은 소정이 하루 종일 동생 대하듯 잘 챙겨준 덕분에 소외 받는 기분 없이 더욱 일을 즐길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온 주은은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며 고개부터 배꼼 내밀었다.
환하게 불이 켜지는 현관 바닥은 턴 비어 있었다.

“설마 오늘도 누굴 데리고 들어오는 건 아니겠지.”

땀을 흘린 탓에 몸이 찝찝해 샤워부터 한 주은은 욕실 문을 살짝 열고 아직 찬혁이 오지 않은 것을 확인 하고는 맨 몸으로 총총 뛰어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물기를 다 닦아내고 막 옷을 입은 순간.
현관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 목소리.
그런데 찬혁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러게 적당히 마시라니까 술도 못 마시는 게 왜 들이 붓고 난리야 난리는. 야. 강찬혁. 정신 차려 임마. 집에 다 왔어. 어후. 더럽게 무겁네 이 자식.”

낑낑 대는 소리에 이어 뭔가 바닥에 쿵 떨어지는 소리에 주은은 살며시 방문을 열었다.
방이 현관 바로 앞에 있어서 한 눈에 상황이 들어왔다.
문제는 상대방도 한 눈에 주은을 알아본 것이다.

“어? 누구?”
“아. 저는…….”

채 말리지 않은 머리를 하곤 막 씻고 나온 뽀송한 얼굴로 주섬주섬 나오는 주은의 모습에 그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이내 미간 사이를 짙은 주름이 갈랐다.
그리곤 바닥에 쓰러져 있던 찬혁의 머리통을 더덜이 없이 후려쳤다.
퍽!
그 소리가 너무 커 주은의 어깨가 들썩였다.

“이게 집에다 여자를 숨기고 사네. 어이 아저씨. 눈 좀 떠봐!”

저렇게 맞았으면 정신을 차릴 법도 한데 미동도 없는 것을 보니 꽤나 취했나 보다.

“오빠 술 많이 마셨어요?”
“오빠? 아. 찬혁이요. 별로 안마셨는데 워낙 술을 못해서……. 그런데 누구세요? 여자친구?”
“아, 아니에요. 동생이에요.”
“동생? 찬혁이 외동인걸로 아는데. 사촌?”
“네. 뭐 그런…….”

설명하면 복잡할 것 같아 우선 둘러 댔다.

“아. 그래요? 그럼 저 좀 도와줄래요. 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찬혁이 친구에요 친구. 유일한 친구. 우진이라고 해요, 정우진.”

일하고 여자만 아는 줄 알았더니 친구도 있었네.
사람 좋아 보이는 부드럽고 친근한 얼굴. 짙은 눈썹과 쌍꺼풀이 옅은 눈, 그리고 오뚝하게 내려앉은 코와 입은 꽤나 호감형이었다.

“…….”

주은은 조심스럽게 나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찬혁의 근처로 다가가자 코릴 찌를 술 냄새에 절로 눈썹을 찌푸리며 손으로 코를 가렸다.

“정말 많이 안마셨어요.”

주은의 눈치를 보는 건지 눈꼬리를 내리며 웃어 보이는 우진은 그 와중에도 찬혁을 깨우기 위해 그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주은은 찬혁이 머리맡에 쭈그리고 앉아 짧은 숨을 쉴 새 없이 내쉬며 눈썹을 구기고 있는 그의 얼굴을 내려다 봤다.
어제 보였던 모습과 동일인물이라고 생각이 안 될 정도의 모습.

‘진상.’


5. 심장 떨어지는 소리

주은은 몸을 일으키곤 우진을 쳐다봤다.

“끌고 갈까요?”
“네? 아. 뭐 전 상관없어요.”

여기까지 부축하고 오느라 있던 체력이 다 고갈된 우진은 오히려 잘 됐다 생각하며 신고 있던 신발을 벗고 들어왔다.

“…….”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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