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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소개 · |
“불쌍한 나의 아마레타. 도망가기엔 이미 늦었습니다. 당신이 내 것을 훔쳐 간 그 순간부터 영원히.”
마레는 눈앞의 남자가 그토록 상냥하던 대신관 체라테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처음부터 신전에서 도망치지 않았다면,
단순한 보물이라 믿었던 그것을 훔치지 않았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마레가 제 앞에 선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옅게 휘어진 입술이었으나 검은 눈동자에 서린 것은 짙은 소유욕과 집착이었다.
“저를 피하지 마십시오. 적어도 내가 상냥한 대신관 흉내를 계속하길 바란다면.”
붙잡힌 머리카락이 검게 물들었다. 이 남자처럼 새까맣고 위험하게.
그의 한쪽뿐인 검은 뿔이 어두운 조명 아래에도 존재감을 자랑했다.
저것이 백 년전 신이, 죄인에게 내린 형벌인 줄 알았다면 절대 훔치지 않았을 텐데.
체라테가 마레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서늘한 숨결이 부드러운 목을 스치자 마레가 결국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복수를 위해 제 곁에 남은 건 당신입니다. 이제 아시겠죠. 그때 그 선택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었는지를.”
겁에 질려 떨고 있는 마레의 몸에 날카로운 이가 박혔다.
붉은 자국이 하얀 살 위에 진한 흔적을 남겼다.
마레가 입술을 달싹였다. 신이시여…….
이제 와 신을 찾는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신을 버리고 복수를 택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