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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소개 · |
“결혼하자, 서주야.”
심장이 찌릿했다. 절대로 흔들리지 말자고 굳게 마음 먹었던 것이 한순간에 작은 틈을 보이듯.
“내가 왜?”
서주는 팔짱을 낀 채 승우를 삐딱하게 올려다봤다.
“좋아하니까.”
무심하게 툭, 상대방의 감정은 안중에도 없이 제멋대로 구는 버릇은 언제쯤 고쳐질까?
“난 너 안 좋아하는데.”
“거짓말.”
두 사람 사이에서 지겹도록 오고 간 대화였다.
“어떻게 해도 안 믿어. 넌 날 좋아해.”
서주는 기가 막혀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승우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단순한 착각이야.
내가 불쌍하니까. 그래서 그러는 거라고.
언제부터 시작된 마음인지 스스로 자각하지 못할 만큼 승우에게 자신은 가여운 아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처음 봤을 때부터.”
승우가 나직이 뱉은 말이 속으로 한 생각에 대한 대답 같아 서주는 괜히 뜨끔했다.
“뭐?”
“울보 꼬맹이를 처음 본 날에, 내 운명은 정해졌어. 널 지켜주는 왕자가 되기로 마음먹었지.”
온실 속에서 자란 왕자님은 아직도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흘러가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서주는 이런 달콤한 말에 넘어갈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승우가 본 울보 꼬맹이는 이제 세상에 없으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품고 있어 봐야 보답 받지 못할 마음은 빨리 정리하는 게 좋겠지.
무슨 말을 들어도 태연하게 웃던 승우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서주씨 마음이 누구를 향했는지 정말 모르겠어?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건가.”
우진을 좋아한다는 제 고백의 질문에, 서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일주일. 일주일만 기다릴게. 네가 날 먼저 찾은 적은 한 번도 없는 거 알지? 정말 내가 너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게 아니라면……. 이번에는 네가 날 찾아와.”
선전포고하듯 말하고 돌아섰던 승우의 모습만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밀어내고 또 밀어냈지만, 도돌이표처럼 결국은 승우 너였다.
사랑해, 승우야. 너무 늦지 않았다면.